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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위한「문단질서」확립해야 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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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문학사상 최고의 전성기로 지칭되었던 70년대가 지나가고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문학은 급전직하로 침체의 늪속에 빠져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10·26이후의 당연한 정야·경제·사회의 경직화현상을 탓하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문학의 상업화 현상등 문제가 없지 않았던 70년대를 반성하는 필연적 과도기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한국문단 자체의, 혹은 문단외적인 여러가지 원인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간에 오늘날과 같은 문학침체의 현상이「문단외적인 영향력」이나 「문학외적인 문단의 정치질서」따위에 의해 쉽사리 치유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문학은 언제나 극도의 순수한 예술정신에서 창출되므로 어떤 경우에도 그 예술정신은 문학외적인 상황에 의해 강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문학인들은 문학외적인 특히「문단의 정치질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가장 구체적인 예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이른바 한국문인협회를 둘러싼 지도층문인간의 해묵은 갈등이었다.
소위「김동리-조연현의 대회전」으로 불리는 73년초 문협이사장 선거를 고비로 문협은 문인의 권익옹호라는 본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단의 지도층 형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 듯한 느낌을 주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문협 산하에 시·소설·평론등 8개 분과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분야별의 독자적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난입되더니 급기야는 지난 5월 설창수 이원섭 이근배 유현종씨등을 주축으로 하는 한국문학협회가 발족, 문단의 양분시대를 맞게 되었다.
『문인협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바에야 새 단체가 생겨 문단활동을 활성화해야하지 않겠는가』하는 문학협지지파, 『정관이나 운영에 잘못이 있다면 의견을 나누어 옳은 방향으로 고쳐 나가야지 새 단체를 만드는 것은 문단파벌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인협지지파가 팽팽히 맞서고 상당수의 문인들이 강 건너 불 보듯 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여행중이던 문인협 조영현이사장이 갑자기 동경에서 작고했다.
문학평론가로서의 조씨는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중진문학인이지만 문단적인 의미에서도 그의 타계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실질적으로 그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난 10년간 한국문단의 최고 실력자였으며 따라서 문단계보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말년에 이르러 문단의 최고실력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에 자주 회의를 표명했으며 특히 금년 초의 문협총회를 앞두고 이사장에 출마하지 않을 것을 명백히 했다가 측근들의 적극적인 만류로「마지못해」이사장직을 다시 맡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면 말년에 이르러 문단쟁점이라는 그의 위치가 측근들의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한국문단인맥의 구조체계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져본 사람이었다면 이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게 얻어진다. 두말할 나위 없이 조씨 퇴진후의 새로운 문단지도층형성을 감안한 작용이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는 조씨의 측근 가운데 그의 자리를 이어받을 만한 뚜렷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지는데 그렇다면 조씨의 작고 후에 문단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섣불리 점치지 못한다. 이 상태로 계속된다면 이사장직을 대행하게된 조경희씨 체제로는 앞으로 1년간은 별문제가 없지만 조연현씨 사후에 이르러 문학협의 존재의의는 희미해졌으며, 따라서 문단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문단의 공통된 여론이기 때문이다.
비단 문학협 뿐만 아니라 문학단체는 하나로 족하므로 순수하게 문학활동만을 전제로 한 동인등의 모임 이외에 모든 문학단체는 해체돼야 한다는 것이 많은 문인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문단이 하나로 통합된다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통합된 문단의 주도권을 쟁탈하려는 정치 지향적 문인들의 문학외적인 「정치활동」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문학협의 L씨등은 문단통합을 전제로 문단의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며, 이 경우에 대비하여 문인협의 K씨·M씨·S씨등도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들린다.
문단통합도 좋고 주도권 다툼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문단은 문학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문학단체가 문인이나 문학만을 위해 존재하게 될 때 그 문학단체의 지도층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것은 전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80년대 문학침체의 활로를 문학만을 전제로 한 「문단의 새질서」에서 찾아야 할 때다.
정규웅 <본사 편집위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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