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세월호 희생자는 315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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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자신의 순서도 아니었다. 지방항만청 직원들이 미리 짜놓은 순번에 따르면 그는 다음 다음 차례였다. 앞의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로 출장이 어렵다고 해 손들고 나선 일이었다. 떠나기 바로 전날이 새집으로 이사 가는 날이라 친한 동료가 대신 출장 가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마다하고 가방을 쌌다. 비극의 복선은 그렇게 드리워졌다.

 8월 31일 오후 10시20분 전남 진도군 동외교차로 횡단보도.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여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건너던 그를 6.5t 트럭이 덮쳤다.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고, 3일 뒤 목포의 한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울산지방해양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 이창희 주무관.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했던 서른넷의 해양수산부 6급 공무원의 삶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사고 6일 전인 8월 25일부터 진도의 세월호 침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 일했다. 실종자 수색 방법 검토와 국회 제출용 자료 정리가 임무였다. 한국해양대 출신인 그는 항만청에서 배 구조에 밝은 직원으로 통했다.

 2년 전 두 살 아래 부인과 결혼했고, 올해 2월에 아들이 태어났다. 출장 날 아침 생후 6개월 된 아이는 여느 때와 달리 아빠 품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이 주무관은 집안의 기둥이기도 했다. 누나 하나 있는 외아들이다.

 그의 가족이 국가로부터 받게 될 돈은 최대치가 1억500만원. 퇴직금 2500만원에 공무상 재해 인정에 따른 유족 보상금 8000만원을 더한 액수다. 아직도 진행 중인 교통사고 조사에서 그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판단되면 보상금은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그러면 합계가 6500만원이다. 그가 횡단할 때 신호등이 노란등 점멸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하는 경찰은 보행자 과실 여부를 따지는 중이다.

 세월호 사건 수색·수습과 관련해 지금까지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군 병사 한 명, 경찰관 한 명, 민간 잠수사 두 명, 헬기 추락사고를 당한 소방방재청 특수구조요원 다섯 명, 수색 작업을 돕던 민간 어선 승선자 한 명, 그리고 이 주무관. 세월호 참극에 묻혀 이렇다 할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이들이다. 소방방재청 요원들은 아직 순직 판정도 받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 사망·실종자는 304명. 그리고 지난 반년간 이 11명이 추가로 세상을 떠났다. 훗날 만들어질 세월호 희생자 추모시설 한쪽에 이들을 기리는 공간도 함께 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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