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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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사실상 중앙정보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다. 권총으로 직접 살해한 사람은 제3국인이었지만 김재규 당시 중정 부장이 살해를 지시했고 당시 주프랑스 공사와 중정 연수원 2명이 제3국인을 돈을 주고 고용했다는 국정원 발표다. 이 사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입됐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직.간접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국정원은 배제하지 않았다.

김형욱 실종을 둘러싸고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억측이 있어 왔다. 가장 최근에는 자신이 직접 파리 근교의 닭 사료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됐다는 주장도 있었고 제3국에서 살해됐을 것이라는 다른 나라 기관의 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이번 발표로 김형욱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 큰 가닥을 잡았다.

국정원 보관 자료 1만900여 쪽과 공판기록 등 9500여 쪽 자료 등을 검토하고 당시 중정 요원 등 33명에 대한 면담을 실시한 결과라고 한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였다. 밝히려 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밝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관련자들을 찾기가 더 쉬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밝혀내려 하지 않았기에 26년 동안이나 묻혀 있어야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국정원 조직 차원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김형욱 사건은 국가 최고 권력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초법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초법적이고 무자비한 일들이 국가 기관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이 비극이다.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절대권력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진실은 결국 밝혀지고야 만다. 더디 걸리느냐, 빨리 드러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위정자들이 다시금 새겨야 할 좌우명인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사의 진상 규명은 정치를 초월해야 한다. 하나의 역사적 책무로서 진실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그러한 작업이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왜곡도 결국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