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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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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울면서 어디가니

내어머니 묻은 곳에 젖먹으러 나는 가네

물 깊어서 못간단다 산 높아서 못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쳐가고 산 높으면 기어가지

가지 줄게 가지마라 문배 줄게 가지마라

가지 싫다 문배 싫다 내 어머니 젖을 내라

내 어머니 무덤 앞에 개똥참외 열렸길래

한 개 따서 맛을 보니 내 어머니 젖맛일세

- 평안북도 성천 지방 전래 민요시

민속학을 공부하면 명절 무렵 현장답사를 자주 나가는데, 내가 남다른 점이 있다. 대부분 연구자는 설날이나 추석 며칠 전에 내려가지만 나는 당일이나 다음 날 내려간다. 사전 준비 과정보다 사후 마무리 대목에 더 관심을 기울여왔다.

 어느 해인가, 팔월 추석 해질 무렵 안동 지역 마을을 지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우물가에서 방망이로 빨랫감을 탕탕 내리치고 계셨다. “할머니 이 좋은 날 웬 빨래세요?” 했더니 어젯밤에 내려왔던 자식 손주들이 아침 일찌감치 제사만 지내고 떠나면서 내놓고 간 수건 뭉치란다. 몇 시간 머물고 휑하니 가버린 피붙이가 그리워 그 빈자리를 빨랫방망이 소리로 채우고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의 섭섭함을 민요시 ‘타박네’는 어쩌면 그리 절절히 그리고 있는지. 각 지역에 전승되는 민요를 흥얼거리다 보면 그 땅이 품어온 온갖 희로애락이 절로 몸으로 스며들면서 민속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숙연해진다.

 우리 10남매를 낳아 키우신 어머니가 연세를 이기지 못해 휘청하시자 집사람이 목욕 시켜드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며느리 부축받아 젖가슴을 드러내고 나오시는 ‘울 어매’가 아직 곁에 계셔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