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 웃다 80年] 15. 대낮의 납치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 친구이자 동료인 동갑내기 구봉서(左)씨와 한 코미디 프로에서 다투는 연기를 하고 있는 필자.

TV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예전에 나는 유랑극단의 떠돌이 희극배우에 불과했다. 그러나 TV를 타면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톱스타가 됐다. 방송사 앞에는 팬들이 몰려들었다. 극성 팬들이 자동차 위에 무더기로 올라타는 바람에 타이어가 펑크날 정도였다.

1973년 12월이었다. 내겐 평생 잊지 못할 겨울이다. 메이저 방송사들이 대낮에 납치극 소동을 벌였다. 표적은 '배삼룡'이었다. 요즘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은 톱스타가 감독을 오라 가라 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때는 달랐다. 연예인에게 방송사와 PD는 살아있는 '신(神)'이었다. PD의 한마디에 연기자들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3년째 MBC에 출연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만이 컸다. 이런저런 인기 조사에서 배삼룡은 부동의 1위를 달렸다. 그러나 MBC는 나를 2등으로 대우했다. 나와 동갑인 동료 구봉서만 1등 대우를 받았다. MBC에 먼저 들어왔다는 것이 이유였다. 참다 참다 결국 나는 폭발했다.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최고 인기 프로였던 '웃으면 복이 와요'와 '부부만세'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MBC가 발칵 뒤집혔다. 소문은 빨랐다. TBC에서 즉각 사람을 보냈다. 뜻밖에도 김경태(작고) PD였다. 그는 MBC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를 처음 만들었던 인기 PD였다. "난 이미 TBC로 옮기기로 결정했어. 김경태와 배삼룡만 있으면 대한민국 최고의 코미디 프로를 만들 수 있어"라며 나에게 TBC행을 강력하게 권했다.

MBC와 TBC, 양측은 나를 붙들기 위해 혈안이 됐다. 결국 라디오 공개방송 현장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당시 나는 동아방송의 라디오 공개방송 '명랑 스테이지' 진행을 맡고 있었다. 변변한 스튜디오가 없던 시절, 서울 을지로5가의 수도예식장이 공개방송 현장이었다.

그런데 MBC와 TBC 직원 40여 명이 예식장으로 쳐들어왔다. 임무는 하나였다. '납치를 해서라도 배삼룡을 데려오라.' 삿대질을 하던 양측은 육박전까지 벌였다. 방송 녹음이 수시로 중단됐다. 겨우 방송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양사 직원들이 달려들었다. 치고받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양복도 찢어지고, 구두도 한 짝 잃어버렸다. 뒤에서 넥타이를 잡고 매달리는 바람에 숨통이 막힐 지경이었다.

MBC 직원들이 나를 차에 쑤셔넣었다. 그때 TBC 차량이 무섭게 돌진해 왔다. "아악!" 구경하던 행인이 발을 치이고 말았다. 두 승용차 사이에 낀 어떤 사람은 "갈비뼈가 부러졌다"며 비명을 질렀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MBC 승용차로 떠밀려 들어갔다. 타고 보니 고위 간부의 피아트 승용차였다. 출구를 향해 달리는데 TBC 직원들이 앞을 막았다. 그리고 지붕 위에 올라가 차를 마구 부수기 시작했다. 최고급 승용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렸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싶었다.

배삼룡 코미디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