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세계 인간은 어디까지 접근했나 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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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텅빈 공간.
공기의 분자가 아주 희박한 상태를 사람들은 진공이라고 부른다.
지상의 공간은 대기로 채워져있어 진공이 아닌것 같지만 공기분자와 분자사이에는 진공이 존재한다.
지상의 대기는 질소·산소·수증기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80%가 질소다.
보통 공기분자의 반지름은 1억분의1cm. 따라서 1입방cm속의 공기분자의 수는 엄청나 1조의 1만배나 된다. 그렇지만도 분자들이 워낙 작은 것들이어서 이들 분자들을 한데 뭉쳤다고 가정하면 차지하는 부피는 1천분의1 입방cm밖에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볼수있는 공간속인 대기중에는 상상할수 없는 수의 공기분자들이 들어있지만 따지고보면 거의 진공상태인 셈이다.
우리가 마음대로 걷고 뛰놀고 하는 것도 사실은 진공덕분이라 하겠다.
이런 진공상태는 위로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7백20km상공의 대기 1입방cm속의 공기분자는 2천억개, 지상 1만km우주공간에서는 1천개로 기체분자의 수가 급격히 떨어진다.
자연적으로 생긴 초진공은 바로 우주공간이다. 그곳은 거의 완벽한 진공으로 1입방cm속에 존재하는 기체분자는 1∼2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지상에서의 이러한 진공기술은 어디에 어떻게 이용될까.
쉽게는 전구·진공관·TV의 브라운관에서 우주개발에 이르기까지 진공기술은 중요한 공헌을 하고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분야가 우주개발과 진공야금부문이다. 특수합금은 청정도와 산화도가 합금의 성능을 결정짓기 때문에 진공용해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상 1만km의 초진공상태인 우주공간에 물체가 있다고 가정하면 지상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
진공에 재료와 부품이 노출되면 표면에 붙어있던 수증기나 각종 기체분자들은 날아가버려 금속표면 자체가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금속면의 분자들이 진공쪽으로 튀어나가려는 힘이 커져 표면이 손상되기 쉽다.
우주공간에서 흔히 인공위성의 안테나가 밖으로 나오지않는다든가, 회전하도록 만든 기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게되는 것도 이런 경우일때가 많다. 지난번 콜럼비아호가 우주공간에서 로보트팔 실험을 하면서 팔이 접혀지지 않으면 폭파해 버릴 준비까지 한것도 지상에서는 일어날수 없는 문제들이 우주공간에서는 생길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진공상태에서는 가는 선이나 얇은 판이 의외로 쉽게 파손되는데 이것도 표면에 흡착된 분자들이 초진공속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초진공상태에는 고순도가 요구되는 반도체산업에 대단히 유리하다. 반도체 회로에 불순분자들이 부착되면 회로의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반도체 산업에서 유용한 진공정도는 지상5백km 우주공간과 비슷한 진공상태로 지상에서는 「우주환경재현장치」라는 특별한 시스팀으로 만들어 낼수 있다.
특수금속분야에서도 진공기술은 절대적이다.
특수합금의 제조에서는 불순물의 제거가 대단히 중요하다. 비행기나 원자력발전에 쓰이는 특수금속들은 모두 진공에서 용해되어 생산되고 있다.
이런 금속물은 용융점이 높기때문에 대기중에서 작업하면 곧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산화홰 버리므로 순도높은 특수합금을 만들수가 없다. 이때문에 진공용해 기술과 실비가 필요하게 된다.
아직 국내에서는 진공용해 기술과 실비가 도입되지 않아 철강산업에서 제품의 고급화를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고있다.
불순물이 전혀 없는 금속을 「이상금속」이라고도 하는데 지금까지 인간이 지상에서 얻어낸 최고순도의 물질이 「텐·나인」이라고 불리는 반도체의 결정이다.
텐나인이라면 어떤 물질속에 1백억분의1정도밖에 불순물이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고순도라고 하지만 실제로 반도체속에는 1입방cm당 10의10제곱에 해당하는 불순물이 들어있게 된다.
이렇게 인간은 초진공속에서 한편으로는 고순도의 물질을, 다른편으로는 새로운 기능을 갖는 혼합물을 추구하고 있다.
아뭏든 현대의 진공은 18세기의 과학자들이 생각한것 처럼 무가 아니며 오히려 물질의 근원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것은 진공중의 진공인 우주공간도 『태초에 빛이 있었다』는 창세기의 귀절처럼 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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