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260>제75화 패션50년|남성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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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67년4월에 개최된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당시 회장 김경애) 주최 제3회 전국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임태수(현 KDC회장)·한상철(현 N패션 수석디자이너) 두 남성이 각각 특상(1등)과 최우수상(2등)을 차지해 버리자 신문과 여성지 등 매스컴들은 남성 디자이너의 두드러진 진출이 67년 패션계의 새로운 바람이라고 크게 보도했다.
여기서 잠시 그 당시의 한 신문기사를 인용한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한국 패션계는 요즈음 대학출신의 젊은 남성디자이너들이 잇달아 등장해서 및 해 전만 해도 거의 독주하다시피 하던 여성디자이너들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지난4월의 전국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임태수·한상철 두 남성이 각각1, 2위를 차지함으로써 많은 여성경쟁자를 누른 사실도 이런 추세를 나타내는 한 예이다.
이들을 뽑은 심사위원이었던 원로 여성 디자이너들은 「모험을 즐기는 남성들의 폭넓은 창작태도는 여성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영역」이라고까지 말하고있다.
즉 「꼼꼼하고 잔 손재주가 뛰어난 여성들에 비해 초기에는 바느질 솜씨가 무디고 진보도 더딘 편이지만 일단 그 한계만 넘어서면 꾸준한 발전을 보여 얼마 안 가서 오히려 같이 출발한 여성들을 앞지른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 특유의 모험심은 대담한 선과 색채로써 패션의 생명인 새로운 창의성을 훌륭히 발휘하게 된다는 의견이다.
우리나라 여성복식계에 남성 디자이너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약8년 전.
그 당시 남성 디자이너 지망생은 불과 5, 6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국제복장학원 한군데에만도 30여명을 헤아릴 만큼 늘었다.
더우기 그들의 입학 경향을 보면 초기에는 「남자가 바느질을 해서 장래성이 있을까?」하는 회의에 짜지는 등 불안한 상태를 보였으나 요즈음은 선배들의 활발한 진출에 힘을 얻어 자신감을 갖고 디자이너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 디자이너의 선두주자 격인 앙드레 김·이용렬·박정일·안성공 씨등과 이번에 새로 나온 임태수·한상철씨 등 남성 디자이너들을 가장 많이 배출시킨 국제복장학원 최경자원장은 학원입학을 원하는 남학생을 면접할 때 성격이 덜덜하지 앓고 침착한 타입을 뽑게되며 여성고객을 상대하게 되는 직업적 특성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외모가 단정한가도 고려에 넣는다』그 말하고 있어 흥미롭다(1967년5월13일자 신아일보문화면).
이상의 글에서 알 수 있듯 67년 당시만 해도 아직은 남성이 여성의 옷을 만든다는 일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겨지고 그만큼 남성디자이너가 희소가치를 지니고있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5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최초의 남성디자이너가 출현한지도 20년이나 지난 오늘날은 남성이 여성옷을 만든다는 사실이별로 시기할 것도 없을 만큼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만큼 여성복식계에 진출한 남성 디자이너 자신들의 노력이나 각오가 남달랐던 것도 그 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같은 패션계에 몸담고 있는 동료 디자이너로서 늘 유감스럽게 느끼는 일이 한가지 있다.
남성 디자이너 자신들에게 느끼는 유감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사회일부에 남아있는 왜곡된 인식이랄까 오해같은데 부닥칠 때 느끼게되는 난처함 같은 것이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쉽게 예를 들자면 TV드라마나 신문 연재소설 같은데 간혹 등장하는 남성 디자이너의 모습이나 성격묘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쪽으로만 과장되어 있어 딱하다는 이야기다.
즉 콧소리가 많이 섞인 가성으로 여자처럼 말한다든가. 손짓 몸짓 등 제스처도 연체동물처럼 흐늘거리고 십중팔구는 돈 많은 유한부인들과 부도덕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 그런 오해를 살만한 인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수한 4년제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과정과 마차가지인 패션디자인연구원에서 진지하게 디자이너수업을 하고있는 많은 남학생을 위해서도 이제쯤은 옛날 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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