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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 여호수아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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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자 육상 1600m 계주 결승전에서 여호수아(왼쪽)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뉴시스]

여호수아(27·인천시청)가 한국 육상 단거리의 자존심을 살렸다.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400m 계주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한 아쉬움을 1600m 계주에서 깨끗이 씻어냈다.

 여호수아를 비롯해 박세정(30·안양시청)·박봉고(23·구미시청)·성혁제(24·인천시청)로 구성된 남자 1600m 계주 대표팀은 2일 인천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에서 3분04초03으로 일본(3분01초88)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육상이 이 종목에서 메달을 딴 것은 1998년 방콕 대회 동메달 이후 16년 만이다. 여호수아는 200m 동메달에 이어 대회 두 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호수아는 1600m 계주 결승에 앞서 열린 400m 계주 결승에도 나섰다. 그는 이 경기에서 첫 주자로 뛰었다. 한국은 5위로 들어왔지만 실격을 당했다. 3번 주자 오경수(27·파주시청)가 4번 주자 김국영(23·안양시청)에게 배턴을 건네다 배턴 연결 구간(20m)을 넘기는 바람에 실격 판정을 받았다. 지난 3년간 아시안게임 금메달만을 목표로 수없이 배턴 터치 훈련을 했던 선수들은 허탈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숨돌릴 틈도 없었다. 400m 계주 결승을 마친 지 30분 만에 여호수아는 곧바로 1600m 계주에 나섰다. 당초 1600m에는 최동백(20·한국체대)이 나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동백이 지난달 30일 예선에서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 부상을 당해 예비 엔트리에 있던 여호수아가 대신 나섰다.

남자 육상대표 박세정·여호수아·박봉고·성혁제(왼쪽부터)가 육상 1600m 계주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입에 물고 기뻐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마지막 주자로 나선 여호수아는 폭풍처럼 내달렸다. 3번 주자 성혁제의 배턴을 넘겨받았을 때 3위였던 여호수아는 끝까지 투지를 발휘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접전을 펼쳤다. 여호수아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결승선을 통과했고, 기록상으론 사우디와 같았다. 결국 사진 판독 결과 간발의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나면서 메달 색깔이 은색으로 바뀌었다. 은메달이 확정되자 여호수아는 동료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았다.

 목사인 아버지 여재선(56) 씨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 장군을 떠올리며 이름 지은 여호수아는 인천 용현남초등학교 4학년부터 육상을 시작했다. 여호수아는 “아버지가 남들과 다른 일을 해 보라고 하셔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1m82㎝, 75㎏의 좋은 신체조건을 갖춘 여호수아는 2010년 전국선수권 대회 남자 일반부 100m에서 10초33을 기록하며 국내 단거리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시련도 있었다. 그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400m 계주 예선에서 다리를 절뚝이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여호수아가 제대로 뛰지 못한 대표팀은 결국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여호수아는 재활 기간 중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심리적인 상처를 극복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걱정이 많았다. 경미한 햄스트링 부상도 있었지만 4년 전 400m 계주 예선에서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여호수아는 “아버님이 아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금식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들 혼자 고통받는 게 싫다고 금식을 하신다더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기도가 통했는지 여호수아는 지난 1일 남자 200m 결승에서 20초82로 동메달을 땄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한국 육상의 응어리를 풀어낸 여호수아는 “ 한국도 단거리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인천=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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