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민의식 일깨운 김부선씨의 '난방비 0원 폭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폭로한 아파트 난방비 비리 의혹이 상호 비방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씨는 일부 세대의 겨울철 난방비가 ‘0원’으로 나왔다고 주장해 경찰에서 현재 수사 중이다. 그러자 해당 아파트엔 ‘김부선 본인도 계량기 검침량이 0 입니다’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난방비 떼먹은 적 한 번도 없습니다. 헛소리하는 인간들 다 고발합니다”라며 반박하고 있다. 그는 “계량기가 고장나 관리사무소에 갔더니 당시 관리소장이 ‘20만원을 주고 계량기를 고치지 말고 그냥 쓰라’고 해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김씨의 폭로는 서울시 조사 결과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이 아파트에 겨울철 27개월간 부과된 1만4472건을 조사했더니 128세대 300건은 세대 난방비가 한 푼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열량계가 고장났거나 고의로 조작·훼손하지 않는 한 겨울철 세대 난방비가 전혀 나오지 않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동파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난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 아파트 주민들은 지금 양쪽으로 갈려 갈등을 빚고 있다.

 다툼이 커진 데는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 책임이 크다. 김씨 등 일부 주민은 이미 2012년 3월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이때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들이 먼저 문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난방비가 전혀 안 나왔는데도 이를 묵인한 주민들도 문제가 있다. 고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중앙집중식 난방에서 자신들이 안 내면 다른 세대가 더 부담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야 한다.

 아파트 관리비를 둘러싼 민원은 2011년 814건에서 지난해 1만1323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소송도 3000여 건에 이른다. 법적 다툼까지 벌어지면 가뜩이나 삭막한 아파트 공동체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이를 막으려면 입주자대표회와 관리사무소가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 일반 주민들도 무관심에서 벗어나 반상회·입주자회의·입주자카페 등에 참여해 의견을 내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어찌됐든 김씨의 폭로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시민적 실천의 가치를 환기시킨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