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총잡이, 남편 한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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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더블트랩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주부 총잡이. 김미진 선수가 아들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부 총잡이’ 김미진(35·제천시청)이 25일 화성 경기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사격 여자 더블트랩 개인전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다.

 김미진은 한서대 재학 때까지 소총 선수였다. 하지만 대표팀에는 한 차례도 뽑히지 못했다. 결국 총을 내려놓고 교사를 꿈꾸며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다 2002년 운명처럼 사격선수인 남편(손상원·41)을 만났다. 속사권총 선수 출신인 남편의 권유로 클레이 종목인 더블 트랩과 인연을 맺게 됐다.

 두 사람은 교제한 지 1년 만인 2003년 결혼했다. 대표선수로는 선배인 남편은 KB국민은행 사격팀 감독을 맡고 있다. 손 감독은 “아내는 결혼 후 태릉 클레이 사격장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사격을 가르쳐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우연히 후배가 아내의 사격 실력을 보고는 ‘클레이 실력과 재능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테스트를 받으라고 권유했다”고 회상했다.

김미진 선수의 남편인 손상원 감독.

 더블트랩으로 전향한 김미진은 2006년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러고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단체전 은메달을 땄다. 하지만 개인전 금메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김미진은 아시안게임을 위해 주말부부도 감수했다. 손 감독은 서울, 김미진은 충북 증평 친정집에 머물렀다. 2008년 태어난 아들 연호(6)를 친정집에 맡기고 맹훈련을 했다. 손 감독은 “아내에게 생각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주의 집중력’을 가르쳐줬다”며 “타고난 재능은 다른 선수들보다 못할 수 있지만 아내는 정말 열심히 했다. 자기 전에 목총으로 한 시간씩 연습을 했다”고 전했다.

 김미진은 이날 세계신기록인 110점을 쏴 장야페이(중국·108점)를 제쳤다. 국제사격연맹(ISSF)은 지난해 5개국 이상, 15명 이상 선수가 출전해야 기록을 공인받을 수 있도록 규칙을 개정했다. 이 조건이 충족돼 김미진의 기록은 세계신기록이 됐다.

 1987년 사격을 시작해 국가대표로도 뛰었던 손 감독은 월드컵 17위가 최고 성적이다. 그런데 이날 아내가 한을 풀어줬다. 손 감독은 “20년 사격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라고 했다.

인천=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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