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처음으로 국민에게 길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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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규연
논설위원

11만444건 대 3023건.

 전자는 지난 한 해 시민이 전국 공공기관에 낸 제안 건수, 후자는 그 제안을 행정에 반영한 건수다. 시민이 100마디 말을 하면 2~3개만 귀 담아 들었다는 얘기다. 특히 학부모·학생 의견을 경청해야 할 교육기관이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전국 17개 교육청 중 11개가 채택률 ‘제로’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귀는 항상 시민을 향해 열려 있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근대화 초기에 경제·사회 발전을 이끈 세력은 엘리트 군·관료였다. 이후 시장이 커지고 문민정치가 자리를 잡으면서 견인그룹에 기업인·정치인·전문인이 끼어들었다. 그 사이 시민은 항상 계몽 대상이었다. 집단지성과 정부 3.0을 외치는 시대가 됐지만 ‘귀 닫은 정부’는 좀처럼 변태(變態)하지 않았다.

 나라 장래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정부의 눈에 국민은 없었다. 역대 정부는 어김없이 국가비전을 수립했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의 ‘2020년 한국’, 김대중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노무현 정부의 ‘비전2030’,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국가전략’ ‘대한민국 중장기정책과제’ 등이 그것이다. 나라 방향을 정하는 데 한 번도 국민 의견을 진지하게 물은 정부는 없었다. 청와대·정부부처가 국책연구기관에 지시해 그럴듯한 그림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관 주도’를 분식하기 위해 학자·이익단체를 모아 형식적으로 토론회를 거쳤다. 앙꼬 없는 찐빵처럼 ‘국민비전 없는 국가비전’이 번번이 만들어졌다.

 얼마 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핀란드의 투르크대 미래연구소장을 국내에 초빙한 적이 있다. 그는 핀란드가 국가비전(비전 2030)을 수립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핀란드 정부는 민관 연구기관과 손을 잡고 국가비전을 만든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는 1차 버전이다. 이를 웹사이트에 띄워놓고 시민의 의견을 받는다. 전국을 돌며 10여 차례 토론회를 연다. 의견 수렴에 1년을 쓴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에서 꼼꼼한 검증을 받는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얻어지는 실익은 뭘까. 이 질문에 소장은 분명하게 답했다.

 “시민이 동의하지 않는 국가비전은 실행될 수 없다.”

 마침 ‘국민 없는 국가비전’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막 시작됐다.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가 시민이 참여하고 정부·전문가가 이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한국사회 비전을 수립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명칭은 이렇다. ‘국민대토론회, 대한민국, 국민에게 길을 묻다’.

 프로젝트는 3단계로 진행된다. 여론조사 및 의제 선정, 권역별 대토론회, 백서 발간이다. 온라인 설문(2022명)과 국민 대면조사(1206명), 전문가조사(101명)로 이뤄지는 여론조사는 이미 끝났다. 조사를 통해 추려진 6개 미래상(표 참조)의 선호도를 분석해 핵심토론 의제 4~5개를 선정 중이다. 이후 네 차례 권역별 토론회(1000명 참여)와 한 차례 마무리 토론회가 열리게 된다. 이 정도 규모와 깊이로 국민 미래상을 파악해 본 적은 역대 한 번도 없었다.

 사회분열이 극에 달하고 정치가 실종되며 경제가 가라앉은 상황이다. “한가하게 토론?” 하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주도만으로 지금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다. 국민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지 못하면 복지·환경·교육·노동·에너지·인구 분야의 난제를 풀기 어렵다. 국정 방향을 국민에게 직접 묻는 유럽 스타일의 공론화 작업은 생소한 실험이다. 하지만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