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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주부, 네팔 근로자 … 우리 동네는 ‘작은 지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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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아산의 외국인 수가 5년 새 1만 명 늘어났다. 한국 문화를 배우고 즐기는 이주 여성과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들.

천안·아산 지역 외국인 3만 명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5년 새 외국인 수가 1만 명 이상 증가했다. 천안은 전체 인구(61만2329명)의 2.68%, 아산은 인구(30만5531명)의 4.27%가 외국인이다. 외국인 가구는 천안 1.34%, 아산 1.83%를 차지한다.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됐다.

우리 동네에 정착한 이주 여성, 외국인 근로자, 외국인 유학생을 만나 그 안에 숨은 다문화 사회의 명암을 짚어봤다.

이주 여성

천안시 광덕면에 사는 응우옌티바이(25). 그는 2009년 12월 고향 베트남을 떠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시어머니를 모시며 낮에는 남편의 농사일을 돕고 저녁에는 다섯 살 난 아들을 돌보느라 바쁘지만 결혼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농사일이 없는 날이면 베트남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한껏 솜씨를 발휘한다. 고향 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옆 동네에는 고향 베트남을 비롯해 캄보디아에서 온 주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 이들과 함께 얘기하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천안시내의 ‘행복한다문화가족연합회’에서 다른 이주 여성들과 한국어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외국인 근로자

네팔에서 온 하희라(44)씨는 1997년부터 18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97년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그는 한국 남자와 결혼한 후 귀화해 2010년부터 천안외국인력상담센터의 네팔 전문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인 ‘러브 인 아시아’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하씨는 “어려움이 있는 분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 기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일을 하면서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됐다. 처음엔 결혼 후 외로움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하는 게 좋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

1년 전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온 마커스제라드(20)는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좋아 유학길에 오른 젊은이다. 그는 선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시릴(24)와 폴(29)은 8개월 전 한국의 IT산업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전문적인 학과 수업을 듣기에는 언어소통 문제로 어려움이 많아 올해까지 한국어를 배울 생각이다. 한류 열풍과 첨단 IT분야 선두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이 높아진 결과다. 마커스제라드는 “한국 문화는 고향인 아프리카처럼 흥이 많고 친근하다”며 “다양한 한국의 문화를 공부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가정 구성원, 경제의 한 축 자리잡아

천안·아산 지역에 있는 외국인은 지난달 말 기준 2만9543명이다. 천안 1만6470명, 아산은 1만3073명이다. 5년 전인 2009년 1만8454명에 비해 1.6배 늘었다. 성별을 살펴보면 남녀 비율이 큰 차이를 보인다. 천안은 남성 1만90명, 여성 6380명이다. 아산은 남성 8582명, 여성 4491명으로 각각 남성이 여성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여성은 한국 남편을 둔 이주 여성이 많고, 남성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부분이다. 나사렛대 106명, 선문대 400명, 남서울대 150명, 단국대 45명 등 대학이 밀집한 천안·아산 지역의 외국인 유학생은 3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충남 지역 유학생(5600여 명)의 절반가량이다.

 혼인 적령기를 놓친 농촌 지역 미혼 남성과의 국제결혼으로 이주 여성이 크게 늘었다. 다문화 가정 증가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역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근무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 제조업체에는 외국인 근로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돼버렸다.

이주 여성, 외국인 근로자·유학생 증가는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문제점도 발생한다. 대부분의 이주 여성은 언어 장벽에 놓여 있는 데다 국가 간 문화 차이로 인한 가족 구성원 내 갈등, 자녀 교육 문제로 삼중고를 겪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증가하면서 국내 실정법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0월 아산에 거주하는 중국인 교환학생이 대학 기숙사에 침입해 수백만원대의 금품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또 다른 베트남 출신 유학생은 찜질방을 돌며 스마트폰 1000여만원 상당을 훔치기도 했다. 대학이 각종 서류와 인터뷰를 통해 유학생을 선발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불법 체류하는 유학생도 적지 않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외국인 원스톱 지원 시스템 필요

3D 업종 노동력의 빈 자리를 메우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천안에서 근무하는 스리랑카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 A씨는 얼마 전 사업장이 폐업하는 바람에 퇴직금과 임금 700만원을 받지 못했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불법 체류를 하며 생활했지만 결국 본국으로 추방당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M씨는 입국 후 첫 입사한 사업장에서 1년을 근무하고 퇴사 후 B사업장에 취업했지만 입사 2개월 만에 해고당했다. 한국어를 잘 모르고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용재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젠 보다 적극적으로 다문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이주민 지원 정책도 필요하지만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이주민들이 겪는 언어·문화·교육·복지 문제를 면밀히 파악해 원스톱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글=강태우 기자, 이은희 인턴기자, 이숙종 객원기자 ktw76@joongang.co.kr,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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