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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금융 사외이사 '그들만의 리그' 더는 못 봐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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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KB금융지주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금융 사외이사의 민낯은 한심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문제가 된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과 각을 세운 당사자들이다.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관련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회장과 행장 간 내분을 나몰라라 했다. 그러다 금융 당국이 임영록 전 회장의 퇴출을 압박하자 그제야 임 회장을 전격 해임했다. 몇몇 사외이사들은 이런 와중에도 임 회장과의 친분을 더 따지는 ‘의리’를 보여줬다. 회장·행장 못지않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할 이런 사외이사들이 새 회장을 뽑는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KB 개혁을 추진한다니 말이 되는 일인가.

 문제는 이런 사외이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KB금융 사외이사는 사실상 회장과 3인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별도 위원회를 통해 선임된다. 기존 이사와 친분이 있는 인물이나 금융 당국의 청탁에 따라 자기들끼리 뽑는 구조란 얘기다. KB금융 사외이사 9명 중 8명이 서울대 경제·경영학과 동문인 것도 이런 선임 구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보수도 자체 평가 보상위원회를 통해 스스로 정한다. 수천만~1억원의 거액 연봉을 받지만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 그러니 평소엔 거수기와 낙하산 통과용 노릇만 하다가 일이 터지면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인 것이다.

 금융 개혁에 앞장서야 할 사외이사가 되레 금융권 개혁의 대상이 된 지 오래지만 제도 손질은 지지부진하다. 지난 정부 때 금융 ‘4대 천황’의 전횡이 논란을 빚자 지난해 부랴부랴 금융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마련했으나 관련 법안은 여태 국회에 계류 중이다. 뒤늦게 금융 당국은 사외이사를 평가하는 외부기구를 만들고 최고경영자(CEO) 추천위원회도 상설화하는 등의 모범규준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이왕 제도를 손댈 거면 철저히 해야 한다. 일이 터질 때만 반짝 내놓는 땜빵식 처방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더 방치했다간 제2, 제3의 막장 드라마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