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사의 가치는 얼마? 예방접종 늘리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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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경제학자는 누구일까. 설립 70년을 맞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전 세계 경제학자와 언론인들에 던진 질문이다. 그 답을 모아 45세 이하의 젊은 경제학자 25명을 선정했다. 미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될 후보군이다. 리스트는 IMF가 발행하는 계간지 『Finance &ampamp; Development』 최근호에 실렸다.

올해 돌풍을 일으킨『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와 또 다른 화제작 『빚으로 지은 집』의 공동 저자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교수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교육·보건·미디어 등 학문 영역을 넘나들며 현실문제의 해답을 구해온 젊은 학자들도 이름을 올렸다. 25명의 국적은 미국(15명)이 가장 많고 프랑스(5명)가 뒤를 잇는다.

인도·파키스탄·네팔계 미국인까지 포함하면 아시아 출신은 6명이다. 소속 대학은 하버드(6명), MIT(5명), 시카고(3명) 대학 순이다. 25명 중 7명이 여성 경제학자다.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여성이 단 한명 뿐인 걸 감안하면 적지 않다. 이들 중 주요 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 업적을 소개한다.

◇토마 피케티='피케티 현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명해졌다. 15년간 수집한 20여 개국의 방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논한다. 미국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1970년대엔 9%였지만 2000년대엔 약 20%로 확 뛰었다. 그는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자본수익률에서 불평등 원인을 찾는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갈수록 소수에게 부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해법으로는 고소득자에 80% 수준의 높은 소득세율을 매길 것으로 주장한다. 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보를 공유해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자고 한다. 19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강연에서 그는 "한국에서도 최상위계층 소득 비중이 증가하지만 세율은 낮아지고 있다"며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불평등 해소에 중요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매뉴얼 사에즈=불평등과 계층이동을 연구해온 학자. 피케티 교수와 함께 한 미국의 소득불평등 변화에 대한 연구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엔 라지 체티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미국의 세대 간 계층이동성'에 대한 연구를 발표해 주목 받았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어느 지역에 사느냐가 계층이동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에선 저소득층 가정(하위 25%) 아이가 자라서 고소득층(상위 25%)에 속할 비율이 10%가 넘지만, 밀워키와 애틀란타에선 그 비율이 4.5%로 떨어졌다. 이런 차이는 그 지역의 흑인 비중, 학교 수준, 사회적 자본 같은 요인에 따른 영향으로 분석됐다.

◇라지 체티=슬쩍 옆구리를 찔러준다는 '넛지'. 행동경제학자인 체티 교수가 연구해온 주제다. 퇴직연금 가입을 위해 미국 정부는 한해 1000억의 보조금을 푼다. 정부가 1달러를 써도 늘어나는 퇴직연금 저축액은 고작 1센트로 미미하다. 하지만 가입자가 거부하지 않는 한 퇴직연금에 자동 가입하게 하면 가입률은 껑충 뛴다. 자동가입 제도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두게 하는 '넛지'다. 교사 자질이 학생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도 유명하다. 연구에 따르면 좋은 교사는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물론 장래 소득까지 높인다. 1년간 좋은 교사를 만나는 건 한 학생의 평생소득을 8만 달러 늘리는 효과가 있다. 반 전체로 따지면 140만 달러의 가치다. 따라서 정부가 교사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2008년 '대침체' 원인은 금융시스템 붕괴가 아니라 가계부채였다". 올해의 화제작 『빚으로 만든 집』의 두 저자는 미국 지역별 부채 규모와 지출 변화를 분석해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의 가계부채는 2000~2007년 동안 2배로 급증했다. 금융위기 직전 집값이 떨어지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산 주택보유자가 큰 타격을 입었다. 8만 달러 빚을 내서 10만 달러짜리 집을 산 사람은 집 값이 20%만 떨어져도 사실상 투자한 돈을 전부 잃게 된다. 특히 집이 자산의 전부인 가난한 대출자의 충격이 컸다. 이 때문에 주택보유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맸고, 이러한 소비 위축이 결국 위기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블로그(houseofdebt.org)를 통해 미국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든 지금도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 목소리를 낸다. 신용도 낮은 미국 소비자가 할부금융으로 자동차 등 내구성 자산을 구입을 늘리는 건 '빚으로 지은 집'과 마찬가지란 지적이다.

◇매튜 겐츠코프=전통적으로 경제학자가 다루지 않던 영역을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자. 주된 연구분야는 미디어다. 신문의 정치적 성향(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디에 가까운지)이 신문사 소유주가 아닌 독자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는 연구결과로 주목받았다. 또 사람들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선 자신의 이념에 맞는 매체만 골라보는 경향이 뚜렷함을 연구로 밝혀냈다.

◇롤랜드 프라이어=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돈을 주면 학습능력이 오를까? 프라이어 교수는 2007년부터 3년간 뉴욕·시카고·워싱턴·댈러스 공립학교에서 '현금보상제'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현금보상이 학습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시키진 못한다'가 결론이었다. 처음엔 돈 받은 학생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시험점수도 올랐지만, 꾸준한 효과는 없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흑인 소년이었던 그의 성공기는 베스트셀러 『괴짜경제학』에 소개됐다. 농구 특기생으로 텍사스주립대 알링턴캠퍼스에 입학한 뒤 경제학에 흥미를 느끼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을 거쳐 스물다섯 나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왜 흑인의 성취도가 낮은가'에 대한 연구를 이어왔다.

◇에이미 핀켈스타인=보건정책·건강보험과 관련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를 해왔다. 건강보험의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같은 시장 실패 문제를 주로 다뤘다. 올 초엔 미국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수혜자의 병원 응급실 내원 건수가 보험 비가입자에 비해 40%나 많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니콜라스 블룸=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이 당연한 명제를 블룸 교수는 경제학적으로 연구해냈다. '경제정책불확실성지수'를 고안해 시기별 불확실성을 수치화했다. 이 지수는 미국 10대 신문에 등장한 '불확실성' 단어의 빈도 수, 연방정부 지출계획·물가전망의 불일치 정도, 만료를 앞둔 증세규정을 종합해 계산했다. 블랙먼데이, 9.11테러, 리먼 사태와 유로존 위기 같은 격변기 때마다 지수는 크게 상승했다. 2012년 말 342까지 올랐던 이 수치는 올 들어 크게 떨어져 최근엔 73에 머물러 있다.

◇에스더 두플로=개발도상국의 빈곤 탈출을 연구해온 여성 학자. 저소득층에 대한 조건없는 지원은 빈곤을 재생산할 뿐이므로 인센티브 형태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여러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가 2010년 TED에서 강연한 무료 예방접종 관련 실험이 그 예다. 인도 우다이푸르 지역은 그냥 두면 예방접종 비율이 고작 6%에 불과했지만, 보건소를 지은 마을은 17%, 보건소를 짓고 동시에 예방접종 시 한 줌의 콩을 주면 38%로 접종률이 껑충 뛰었다.

◇크리스틴 포브스=세계은행·모건스탠리 출신 여성 거시경제학자. 금융위기와 거시건전성 규제, 자본유출입 문제를 연구해왔다. 부시 대통령 시절 최연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데 이어, 지난 5월 영국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에 임명됐다. 신흥국 자본유출에 대해 "미국의 통화정책이 아닌 신흥국의 경제 펀더멘털 영향"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기타 고피너스= 국가부채, 환율 문제를 연구해온 거시경제학자. 유로존 문제 해결책으로 '재정적 평가절하'를 제시했다.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 국가는 경기 침체 때도 별도의 통화정책을 펼 수 없다. 그는 부가가치세를 올리고 근로소득세를 낮추는 정책을 통해 통화를 평가절하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론을 펼쳤다. 인도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하버드에서 정년보장을 받았다.

◇멜리사 델=25인 중 최연소(31세)인 델 교수는 날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그에 따르면 저개발국은 평균 기온이 섭씨 1도 오르면 그해 경제성장률이 1.1%포인트 떨어졌다. 부유한 국가에선 기온이 경제성장과 뚜렷한 연관관계가 없었다. 빈곤국에서 기온 상승은 농업 생산뿐 아니라 산업 생산성과 정치 불안까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지구온난화가 국가간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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