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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y No' 대거 투표 … 독립 두려움이 GB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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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일(현지시간) 글래스고의 한 호텔에 모여 있던 영연방 잔류파들이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결과가 ‘반대’로 확정되자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다. [글래스고·에든버러 AP=뉴시스]

“투표소로 가는 길인데 어디에 표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

 18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의 셀커크에서 자유민주당의 원로정치인인 데이비드 스틸 경에게 한 젊은이가 다가와 털어놓은 말이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해야 하는지를 묻는 주민투표에 대해 찬성할지 반대할지 고민이란 토로였다. 스틸 경은 “50년 정치인생 중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젊은이는 결국 반대를 택했다. 그 젊은이만이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인 전체가 진정 숙고했다. 그리고 결국 선택했다. 독립 직전까지 갔던 발길을 돌렸다. ‘그레이트브리튼(GB) 및 북아일랜드의 연합왕국’의 일원으로 남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이 투표소를 찾았다.

 19일 개표를 완료한 결과 반대 의견이 200만1926표(55.3%)를 얻어 찬성 의견(161만7989표·44.7%)을 제쳤다. 10.6%포인트 차였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선 평균 4%포인트 차를 예상했었다. 막상 투표함을 여니 그 차가 더 벌어진 셈이다.

 32개 선거구 중에서 찬성 진영은 아성이랄 수 있는 제1도시인 글래스고(53.5%)와 제4도시인 던디(57.4%) 등 4곳에서만 이겼을 뿐이다. 스코틀랜드의 수도로 한때 찬성 의견이 우위인 것으로 알려졌던 에든버러에선 오히려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61.1%).

 투표율은 84.59%였다. 1918년 영국에 보통선거가 도입된 이래 최고치로 윈스턴 처칠과 클레멘스 애틀리가 맞붙었던 1950년 총선(83.9%)을 제쳤다.

같은 시각 에든버러에서는 스코틀랜드 깃발을 두른 독립파 청년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글래스고·에든버러 AP=뉴시스]

 반대 진영이 논쟁의 여지 없게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승리를 확신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18일 투표를 마감하고 30분 후 한 여론조사기관이 반대 진영이 8%포인트 차로 승리한다고 예측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그로부터 두 시간여 후 독립 찬성 운동을 이끈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당수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 개표소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반대 쪽이 유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결과가 그랬다(60.4%).

 오전 1시30분 첫 개표 결과 발표가 있었는데 2012년 SNP가 가장 압승한 지역이었다. 막상 승리의 함성은 반대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53.8%). 연이어 반대 진영의 승전보가 이어졌다. SNP는 믿었던 글래스고나 던디에서도 크게 표차를 줄이지 못했다. 투표율이 평균치를 밑도는 70%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오전 5시 영국 언론들은 반대 진영의 승리를 예측하는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오전 6시8분 세인트앤드루스가 있는 파이프에서도 반대 진영이 승리하면서(55.1%) ‘스코틀랜드의 GB 잔류’가 확정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를 두고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지만 반대 의견’(Shy No)을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고 보고 있다. 우리 식 표현으론 ‘침묵하는 다수’가 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상이며 고연령층이다. 독립에 따른 경제 불안 위험을 감수하기보단 안정을 택했다는 의미다. 1995년 캐나다의 퀘벡주 주민투표와 유사한 양상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투표 막판 찬성에서 반대 쪽으로 표의 이동이 있었다”고 전했다.

 부결이 최종 확정되자 샐먼드 자치정부 총리는 사임을 발표했다. “주민투표는 위대한 정치적 기회였고 160만 명의 스코틀랜드인은 독립을 선택했다”며 “캠페인에서 빚어진 오류들은 모두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제 2년여 끌어 왔던 주민투표 국면은 벗어났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얘기처럼 적어도 이번 세대엔 독립 투표 얘기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국이 바로 정치적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긴 어렵다. 보수당·노동당·자유민주당이 선거막판에 스코틀랜드에 자치권을 더 확대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약속 이행을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잉글랜드 등 다른 지역에서도 차별받고 있다고 항의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내년이 총선이기도 하다.

 캐머런 총리는 이를 감안한 듯 19일 오전 승리를 확정 지은 뒤 기자회견에서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기로 선택해서 기쁘다”며 “약속대로 자치권 이양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 전역에 적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해법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다른 지역에도 자치권 이양 등의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학자인 피터 헤네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주민투표로 인해 어제의 GB와 오늘의 GB는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증시 상승, 파운드 값 급등=스코틀랜드의 영연방 잔류 결정이 나오며 이날 유럽의 주요 증시는 일제히 상승세로 출발했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영국 런던 증시에서 FTSE 100 지수는 전날 종가보다 0.5% 뛴 6853.65로 마감했다.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도 급등했다.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이날 1파운드는 전날보다 0.8% 오른 1.65달러에 거래됐다. 다우존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파운드화가 좀 더 올라 지난 8월 수준까지 회복될 것으로 예측했다. UBS웰스매니지먼트의 빌 오닐 수석투자분석가는 “투자자들이 이미 부결을 예상해 투표 전에 투자 심리가 회복된 상황이라 급등세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에든버러=고정애 특파원,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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