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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속에 불황…실업자 갈수록 늘어 몸살앓는 유럽각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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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0년대후반부터 심화되기시작한 경제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서구국가들의 대부분은 요즘 한결같이 불황의 늪을 타개하기위한 82년도예산안 편성을 두고 노조의 파업공세, 정권내부의 분열등으로 호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유럽전체를 보아 연평균 12%선의 인플레, 8%내외의 실업률, 해마다 누적되는 재정적자등은 이제 비단 경제적인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정치사회등 여러분야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이미 올들어 유럽에서 실시된 각국의 선거나 정권교체과정에서 보수정권이건 좌파정권이건 집권당이 패배하고 새정권이 들어선데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크게는 금년5월의 프랑스사회당정권에서 지난19일 그리스사회당정권의 탄생, 작게는 노르웨이보수당정권의 붕괴및 최근의 네덜란드중도좌파연합의 위기에서 그런예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권이 바뀌게 된 요인중에는 물론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어느나라건 인플레, 실업문제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공격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돼있고 시민들은 항상 이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두어 왔었다.
그러나 경제회복의 기대속에 출발한 새정권 들로서도 오랫동안 침체돼왔던 경제상황을 당장 호전시킬 묘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 인플레·실업·재정적자등 공통된 난제를 안고있는 유럽국가들이 내놓은 처방은 보수건, 좌파정권이건 한결같이 긴축예산·임금억제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정책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경제불황에서는 이러한 정책들이 이율배반적인 경제논리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부 당국자로서는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긴축예산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고 임금을 억제하겠다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인상을 기대하지 못한다는 논리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겨우 5개월전에 출범한 프랑스의 사회당정권이나 이탈리아의 중도연립내각이 최근 노조의 격렬한 파업공세를 받고있는 것도 순전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정부의 이러한 예산정책에서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교적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돼 있는 유럽국가들에게 실업수당과 노령자연금으로 사용되는 이 부문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는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최근 유럼국가들이 마련하고 있는 긴축예산의 대부분이 사회복지부문의 감축에 집중돼 있고 이때문에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노조의 도전을 받고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역시 이런면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당정권은 집권초기의 허니문기간이 이미 지난것이나 다름없을만큼 경제문제로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미테랑」이 집권하기전 12%선이던 인플레는 더욱악화돼 현재 14∼14.5%에 이르고있고 실업률도 6%선을 념고 있다.
사회당의 선거때 공약은 인플레를 내년에 10%선으로 끌어내리고 임금도 인플레보다 높게 인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미테랑」정권이 10월말 내놓게될 예산안은 긴축재정과 임금통제를 통한 인플레억제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때문에 최근 공산당영향아래있는 프랑스 최대의노조 CGT가 주동이돼국영회사인 르노자동차및 일부운수노조등에서 인플레보다 높은 임금인상, 주노동시간 35시간의 단축등을 요구하며 파업공세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노조파업공세는 이러한 경제적인 측면외에도 파업지도를 통해 그존재를 과시하려는 공산당의 정략적인 의도가 짙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평균 인플레수준보다 2배에 가까운 연21%의 인플레와 8%의 실업률, 3백억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안고 몇 개월전 출범한 이탈리아의 「스파틀리니」연립내각 역시 프랑스와 사정이 비슷하다.
82년의 인플레를 16%로 내리고 3년내에 10%선으로 내리겠다는「스파틀리니」내각의 예산정책은 당장 사회보장부문지출의 대폭감축및 소비재관련부문의 축소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노조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고용시장의 축소 및 임금억제로밖에 받아들일수 없다.
지난 23일 공산당계열의 CGIL, 사회당계열의 UIL등 이탈리아 3대노조가 주동이되어 1천여만명이 4시간동안 전국적인 총파업을 벌였던 것도 이러한 정책에 반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파업공세로 정권자체가 당장 큰위협을 받는것은 아니다. 유럽공업국가들, 특히 그중에서도 인플레가 가장 높은 프랑스·이탈리아·영국등에서는 노조의 파업이 거의 연례행사처럼 체질화돼왔고 그나름대로 소화해왔다는데서 위기감을 느끼거나 충격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현재 유럽사람들의 관심은 이러한 파업공세보다는 이의 근원적인 원인이되는 경제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집중돼있다.
영국의 경우 「대처」보수당정권이 들어선지 2년반동안 소위 통화주의이론에 바탕을 둔 「공공지출억제재정」정책을 실험적으로 펴왔으나 지난 30년래 최고의 인플레(18%)와 낮은 경제성잘률을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아직「즉효」가없는 「공공지출억제」재정정책을 어느나라건 부분적으로나마 도입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에서는 그래도 아직비교적 안정됐다는서독(인플레 5.5%, 실업률5%)역시 사회보장부문 감축내용을 담은 82년예산안을놓고 큰 논란이 빚어지고있고 네덜란드(인플레6.9%, 실업률 6%)역시 내년도긴축예산 편성을 싸고 연립정부내부의 의견이 엇갈려 정권구성 3개월만에 수상이 물러날뜻을 밝혀곧새내각이 들어설 전망이다.
가장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꼽히는 스웨덴 역시 이러한 전반적인 경제흐름에서 예외가 못된다. 실업률은 2%로 가장 낮은 수준에 있으나 인플레(13.7%)에 막대한 재정적자누증(국민 1인당부채 6천달러)등으로 내년에도 현재와 같은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그리스사회당정권의 탄생에서도 그랬지만 결국경제회복정책의 실패가 곧바로 정권의 존립과 연결된다는데서 유럽각국정권들이 바로 한해뒤의 예산편성을 두고 큰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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