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대정부 인책공세「패턴」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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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책임지고 물러날 용의는 없는가』-. 이말처럼 국회에서 자주 나오는 말도 없을 것이다. 최근엔 특히 하형사사건·저질탄사건등으로 인책주장은 더욱 뻔질나고 야당측은 해임위제출까지 검토중이다.
물론 여당은 여기에 반대.
인책에 대한 여야의 견해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도대체 어떤 경우에 어느 선에서 인책은 이뤄져야 하는가.
○공직자들의 부정·비리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과거 어느때보다 단호하다. 부정을 저지른 공직자에 대해서는 지위의 고하와 사정의 여하를 묻지않고 문책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박세직·전우환씨의 경우 처럼 대통령의 측근들에도 같은 자(척)가 적용된것이「단호」의 정도를 설명해주는 실례. 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른 자에 국한하지 않고 그 직속상관에 대해서도 지휘감독의 불충분을 물어 도의적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이다(전대통령의 진해회견). 그첫적용예가 한신공영 아파트사건과 관련, 서울시 주택국장이 구속되자 그차상급자인 장원찬서울시부시장이 옷을 벗은 일이다.
「지휘감독 불충분」의 정도가 심해그자체가 법률위반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차상급자의 연대책임은 어디까지나 비법률적·도의적책임이다. 장씨의 경우가 바로 그것.
도의적책임이란 내재적 속성 때문에 책임의 기준이나 내용을 객관화하긴 힘들다. 따라서 56명의 귀한 인명을 앗아갔던 경산건널목 열차사고때는 1차적인 책임자인 철도청장은 사임했으나 그차상급자에 해당하는 윤자중교통부장관은 재임기간이 도의적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나 짧은 3개월밖에 되지않아 면책됐다.
최근에는 저질연탄사건이나 하형사사건과 관련, 감독책임자의 인책범위에 대해 국회나 관가에 많은 논의가 있다.
사직당국이 수사중이므로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현단계로서는 장관까지의 인책은 고려밖인 것 같다는게 행정부의 분위기다.
○집권당인 민정당은 행정부의 책임한계에 대한 당논이 행정부에 직접 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자세. 이런 자세는 저질연탄에 관한 강경한 문책요구성명의 해석이 이전삼전한데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14일 긴급 당직자회의를 거쳐 발표된 성명은 저질연탄에 관한 「모든 행정책임자·감독자들」을 엄중문책할 것을 요구했다. 성명을 발표한 봉두완대변인은 모든 책임자에 동자부 장관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대답해 버렸지만 분위기로는 고위직포함은 확실하다는 느낌이었다.
『돗자리 한장에 정책위의장·문공위원장까지 물러갔는데 이런사건을 그냥 넘길수는 없다』는 한간부의 말은 이때의 민정당분위기를 잘 성명해주는 예.
그러나 다음날인 15일 사태는 급전직하, 권정달사무총장은 장관불포함을 명백히했다. 이같은 급전의 배경에는 △저질탄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못했고△당외분위기에 대한 「감」에 오차가 있었기매문.
탄문제에서 한번 체면이 손상된 탓인지 경찰관 독직사건에는 처음부터『국회에서의 철저규명』이란 신중한 방침으로 나왔다.
돗자리사건에서 보듯 당내에선 강경하고 대행정부엔 온건한 민정당의 「내강외유」자세는 문책한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작용했던 듯.
즉 하형사사건직후 있었던 간부회의에서는 『1개 형사의 잘못으로 치안최고책임자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것.
한 관계자는 저질탄문제로도 24명이 처벌되고 그밖에 상당수의 관련자가 직접·간접적인 책임에 따라 문책을 당했는데 국회에서 따로 책음을 묻는다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민정당은 행정부의 책임문제는 행정부에 맡길 일이라는 태도이고 야당의 정치적인 인책요구는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야당의 인책주장 역시 요즘와선 스타일과 태도가 종전에 비해 크게달라졌다.
과거엔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만 하면 우선 관계장관의 인책론부터 들고 나오는게 버릇이었으나 이번 저질탄과 하형사사건에서 보여준 민한당의 태도는 판이하게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편.
국민당이 저질연탄 사건을 들어 박봉환 동자부장관의 해임안을 내기로 의원총회에서 결의하고 민한당에 동조할 것을 종용했지만 민한당은 「선진상규명…후책임추궁」이라는 한템포 느린 자세를 취했다.
민정당이 특위구성에 응하지 않을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론은 「스텝 바이 스텝」이란 온건론으로 결정된 것.
민정당이 특위구성결의안을 폐기시킬경우에도 즉각 해임안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원내대책회의나 당직자회의를 열어 적절한 사후대책을 논의해보겠다는 것이 고재청총무의 자세.
사후대책에 관계장관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포함되지만 정치적책임이 곧 해임안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고총무는 부연설명했다.
민한당은 지난5월의 제107회임시국회때도 3·25총선에 대한 정지적책임을 물어 내무장관 해임안을 제출하려다가 폐회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성명발표로 대신한일도 있다.
이같은 야당의 「변신」에 대해 김진배대변인은 『과거 야당은 정치를 「입」으로 했기 때문에 무조건 정치적 공세를 펴는 것을 최선의 수단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의 민한당은 책임야당을 지향하고 있기때문』이라고 설명.
고총무도 『이제는 무조건 책임부터 따질게 아니라 진상을 알아보고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하면서 부조리·비리가 적발되면 그때가서 책임을 추궁하는 태도를 보일것』이라며 국민당이 동자부장관의 해임안부터 같이내자고 하지만 우리는 조사부터 먼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국민당측의 태도를 섭섭하다고 비판.
민한당은 특조위안이 폐기되면 사후대책을 당공식기구에서 논의할 예정이나 시일이 지남에 따라 책임문제에 대한 초점은 점점 흐려지고 당내 분위기도 반드시 해임안을 내야한다는쪽의 강경부드가 아니어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불투명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내에서는 보다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야당자세를 지향하고 있다는 긍정론과 장관에대한 해임안마저 당내외의 눈치를 보느냐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제헌국회이후 현재까지 국회에 제출됐던 국무위윈에 대한 해임관계 결의안은 모두 61건.
이중 8건만이 가결됐고 21건은 부결됐으며 15건은 과반수찬성을 얻지못해 폐기됐고 4건이 자진철회됐으며 나머지 13건은 회기나 임기만료로 폐기또는 보류됐다.
2대 국회때는 이정용당시내무장관에 대한 불신임결의안과 인책사퇴권고결의안이 모두 가격됐고 제헌때는 법무부방관에 대한 파면건의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5·16이후 6대국회부터 현재까지 제안된 35건의 불신임·사퇴·해임건의안중 가결된 것은 7대때 권오병문교장관과 8대때 오치성내무장관에 대한 불신임안등 단2건뿐. 당시 야당이 제기한 해임안에 가세한 공화당의원들은「항명」이란 이유로 제명·정권등 징계처분을 받았고 「4·8항명파동」「10·2항명파동」등으로 불리는 일대정치격동을 치렀다.[고흥길·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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