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3)제75화 패션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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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62년5월에는 한국 초유의 국제패션쇼가 열려 우리 패션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되었다.
5·16 혁명 1주년을 기념하는 산업박람희가 경복궁에서 열렸는데 그 행사의 일환으로 세계 15개국의 민속의상과 선진국 일류 디자이너들의 뉴모드가 우리 앞에 선보이게된 것이다.
한국엑슬란회 (회장 이종천)가 주최하고 공보부와 한국산업진흥회 등이 후원한 이 국제행사에는 미국·프랑스·영국·서독·이탈리아·스웨덴·덴마크·인도·태국·인도네시아·월남·필리핀·중국·일본에다 추최국인 한국까지 총 열다섯 나라가 현대의상이나 민속의상을 가지고 참가했다.
작품을 보내온 외국 디자이너들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들로는 프랑스의「피에르·카르댕」과「마기·루후」가 있고, 일본의「하라·노부꼬」와「오찌아이·루리」는 모자 디자이너「구보다」씨와 함께 여러 명의 일본 직업 모델들을 이끌고 직접 내한하기도 했다.
이 행사를 위해 미스 영국이나 미스 프랑스같은 서양미인들도 대거 참가해서 준비과정에서부터 명실공히 국제적인 쇼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국 디자이너로는 주최측의 의뢰로 나 혼자 참가하게 되었다.
출품작은 열다섯점 정도를 의뢰받았는데 국제적인 쇼인데다 모든 참가국의 민속의상이 그 아름다음을 겨루는 자리인 만큼 특별히 한국적인 것이어야겠다는데 의상제작의 기본을 두었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패션에 관심 있는 분들 사이에서는 내 대표작처럼 꼽히는 드레스「책자」다.
애초 고려 청자나 이조 백자나 그 독특한 실루엣이 우리네 여인들의 몸매를 표현한 것이란 얘기가 있지만, 나는 우리나라 자기만이 가진 특유한 곡선미를 역으로 여인에게 입혀보려 시도한 것이다.
소재는 바로 청자색이라 할 수 있는 쪽색 바탕에 잔잔한 완자무늬가 있는 국산 양단이었는데 어깨는 완전히 드러낸 채 가슴부터 허리선까지는 꽉 죄고 허리선에서부터 한껏 넓어졌다가 히프를 지나면서 점차 다시 좁아지는 실루엣을 취했다.
이렇게 막상 디자인이 결정되자 실루엣 대로 히프 부분이 한껏 살도록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골치였다.
그 당시는 요즘처럼 옷감의 종류가 쓰임새에 맞게 다양하지 못했고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할 때마다 부닥치는 기술상의 곤란점들을 손잡고 자상히 가르쳐 즐 스승이나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혼자서 이리저리 궁리를 짜내는 수밖에 별다른 묘수가 없었다.
게다가 양장의 필수적인 부속품들, 이를테면 갖가지 속옷 종류나 모자·장갑·벨트·구두등 장신구들이 귀했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으니 좀 색다른 시도를 해보려면 마땅한 소재를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판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본에서 온 디자이너들이 화려하고 다양한 소재를 갖추고 모자전문 디자이너까지 대동하고 와서 마음껏 자신의 재질을 살리는 것이 부럽기 이를데 없었다.
무슨 옷이건 입어서 제대로 맵시가 나려면 우선 알맞은 속옷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한국 초유의 국제패션쇼에 대표로 참가하는 드레스의 속옷이 부실해서 모처럼 고심해서 짜낸 실루엣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요즈음은 흔해빠진 나일론 망사조차 구하기가 어려워 결국은 삼베와 모시에 빠빳이 풀을 먹여서 서양식 페티코트와는 완전히 그 구조가 반대인「무지개 속치마」를 만들어서 받침으로써 애초에 의도했던 청자 그대로의 곡선을 낼수 있었다.
이렇게 힘들여 완성된 옷에다가 이세득화백의 그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필자에게 있어 정말 크나큰 영광이요 행운이었다.
청자색 드레스 위에 흰 물감으로 점점이 그려진 학과 구름은 그대로 한폭의 완벽한 동양화였다.
그래서 우리 한국여성으로는 극히 드물게 헌칠한 미모를 지닌 김미자양(미스미 해병)이 모델이 되어 입어 보인 드레스「청자」는 18, 19, 21일 사흘에 걸친 쇼 기간중 줄곧 관객들의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계속>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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