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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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나라의 대표적「국민시인」이라면 김소월이 꼽힌다.
바로 그 김소월이 81년도 문화동장 금관장을 받았다. 세상을 떠난지 46년만에 받는 국민의상이다. 33세로 요절한 이나라 최대의 시인이 모처럼 허가를 받게 된 셈이다.
소월 김정식은 흔히 「민요시인」혹은「서정시인」으로 불려왔다.
시집『진달래꽃』에 나타난 그의 주옥같은 시들이 유달리 한국적인 서정성을 담고 있는 데다 우리민요의 운율를 살렸던 점에서 그런 평가는 당연해 보인다.『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산에 약산/진달래꽃/아름따다가실길에 뿌리우리다…』
시 『진달래꽃』이 「개관」지에 발표된것이 1922년. 그 이후 쏟아져나온 그의 기기시들은 모두그런 서정성과 민요풍이 주조를 이루었다.
스승인 안서 김작시인은 『소월의 특재는 민요에 있었다』고 술회한바있다.
작년에 소련요학원산하 속양학연구소의연구윈「가르치나야」가 학위논문으로제출한『김소월』에서도 소월의 시와 한민족의 서정성이 주로 대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소월의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작년엔「항일저항시인」으로 해석한 어느 시인의 명가도 나왔다.
시『인종』은 우리민족을 어버이 잃은 고아로 비유하면서 돈육구국자강의 주장을 폈다.
『우리는 아기들, 어버이 없는 우리를/누가 너희들더러,부르라더냐/즐거운 노래만을, 용감한 노래만을… 인종은 가장 큰 덕이다 /최선의 반항이다. 아직 우리는/힘을 기를뿐,오직 배워서 알아보자』
소월시의 주조인 7·5조 율격은3·4조 혹은 4·4조가 섭화있는율동감을 담고있는 우리고전민요의 율격과는 차이가 있다는 한학자의 반논도 나왔다.
「형상학의 시인」이란 설도 나왔다. 어느 교수는 순수서정시로 이해되고있는 『산유화』 조차 『간단한 시형을 빌어 우주전체를 감싸고 도는 진리를 다루고있다」고 설명했다.
『…山에는 꽃지네 꽃이지네/갈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시상의 깊이와 시적기교면에서 소월은 거의 절정에 다다른 때문에 이 「천재적소질」를 가지고「기적적인 완성품」을 만들어낸 시인을 한갓민요시인으로 부르는 것은 무의미하고잘못된것이아닐수 없다고도 한다.
소월은 어느면에서 과소평가된점은 있었다. 그건 그의 시가 너무 완전해서 쉬워보인 때문이다
소월은 말년에 『노래도 부를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술간을 벗삼았다』고 안서는 전한다.
나라잃은 치욕의 시대에 술잔을 벗했던 민족시인 소월의 슬픔이 새삼 새겨진다. 민족의 마음의 훈장을 영전에 바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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