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정치」사라지고 「일괄타결」도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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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화정치를 하되 막후협상은 않고 협상은 하되 거래는 않는다는게 새정치를 펼치려는 민정당의 입장이다.
정기국회 들어 일정조정이다, 국회법심의다 하여 각 정당간에는 연일 회담과 협상이 열리고 조정과 절충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양상을 보면 새 모습도 있지만 구태 역시 없지 않다.
요컨대 협상과 거래의 차이는 무엇이며 「막전」 과 「막후」 는 또 어떻게 구분될지 아직 명백치 않은 점도 있고 교섭「기술」이나 자세 역시 썩 세련됐다고만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과거식의 일괄협상, 또는 연계작전이 쏙 들어갔다는 점이다.
예산안·정치의안등 현안을 한데 묶어 여가 A를 양보하면 야는 B를 양보해 일괄타결하는 식의 이른바 패키지 딜링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민한당이 국회법심의과정에서 예결의원명단을 안내 예결위구성을 지연시켰지만 표면상 양자를 연계시키지는 않고 있다. 『당내사정으로 예결위원선정이 늦어졌다』는 것이 명단을 안낸 이유.
다른 말로 한다면 뭘 줄테니 뭘 내놓으라 하는 얘기를 야당은 감히 못하고 집권당은 그런 식으로 할 뜻이 전혀 없다는 얘기다.
교섭의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
11대 국회가 개원된지 5개월반이 지나는 동안 과거와 같은 요정정치·호텔정치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사무총장들간의 몇차례 회동과 국회운영을 둘러싼 총무들간의 접촉이 있었지만 특정 이슈를 놓고 며칠간에 걸쳐 여야가 줄다리기식의 협상을 벌이거나 거래식 협상은 없었다.
최근 국회법개정안의 심의를 놓고 총무들간에 빈번한 접촉을 갖기는 했지만 대개는 의사당안의 운영위원장실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 는 과거의 정치용어는 통용되지 않았다.
간혹 총무단이 회식을 하거나 골프도 더러 같이 쳤지만 그것도 대부분 친선이나 분위기조성용의 성격이었다.
민정당측은 최근 국회법심의를 위한 여야 접촉과정에서 과거 스타일의 잔재가 야당측에 상존한다고 보고있다.
민한당이 결코 국회법심의와 예결위구성을 링크시키는게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당소속 예결위윈명단을 제출치 않아 예정된 예결위구성이 연기되고있는 사실이라든가 부총무들의「합의」가 총무회담에서 번복되는사례등은 구정치적 작풍의 일단이라는것.
총무들이 보도진의 눈을 피해 만나는 것도 구풍의 단면이고 야당이「당내대화활동의 필요성」 을 여당에 강조하는 것도 어딘지 석연치 않다는 얘기가 의사당 주변에서 간혹 들린다.
야당이 재주를 너무 부린다는 비난이 있는가하면 여당이 야당을 코너로 밀어붙이면서 자기목표 관철에만 급급하다는 비판도 없지않다.
야당에 적절한 명분을 주면서 여당의 목표를 관철시키는 차원 높은「정치기술」 이 미숙하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운영은 여야대화를 통해 이뤄져야하며 대화는 호양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 완승이나 다른 일방의 완패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여야가 협상자체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협상을 둘러싼 비리의 구태를 배격해야 하는데 집권당측이 비리를 겁낸 나머지 꼭 필요한 협상의 문호까지 좁혀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도 있다.
고재청민한당총무는 『서로가 양보를 하고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것이 정치협상인데 지금의 민정당은 말로만 대화를 주장하고 실제 국회운영을 위한 타협과 양보의 미덕은 발휘하지않아 아쉽다』 며 『벽에 대고 반응을 기다리는 격』 이라고 비유.
반면 민정당측에서는 정정당당한 논리로 결론을 내야지 「호의」 를 기대하거나 더우기 당차원이 아닌 교섭당사자 개인에게 「호의」 를 베풀수는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정치교섭은 교섭주역의 당내실력에 따라서도 모양이 달라진다.
과거엔 협상주역이 합의사항을 각기 자기당에 먹히도록 하는 힘을 상당히 발휘했고 교섭이 난항할 경우 실력자끼리의 막후접촉이나 실력자대 실력자의 중진회담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11대 국회에서는 당론은 협상무대로 충실히 전달되지만 협상내용이 당론으로 반영되는 정도는 다소 떨어지는 인상. 말하자면 협상주역의 당내.입장이 과거에 비해 다소 약하다고나 할까.
국회대책 하나하나가 총무의 단독결정보다는 당의 공식기구를 통하는 경우가 더 많다.
민정당의 경우 아침마다 열리는 당직자회의에서, 민한당도 총재단과 총무간의 협의나 당무회의·원내대책회의등 당공식기구를 거쳐 당론이 결정되고 원칙뿐아니라 비교적 작은 문제라도 다시 회의에서 걸러 당론을 조정한다.
민한당의 경우는 총무가 다양한 당내의견도 중시해야하지만 국민도 의식해야 하고 정치권밖에 있는 구야권까지 항상 의식해야 하기때문에 행동반경의 폭이 상당히 제한되는 고충을 지니고있다.
민정당의 경우는 고위층의 재가를 받은 사항은 쉽게 수정하기 어려운 애로가 있다.
국민당이라는 제3당의 존재도 새시대의 청치교섭과정에서 독특한 몫을 하고 있다.
김종철총재는 『과거의 정치협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비리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극한대립이었다』 며 『이 같은 양당제의 모순제거를 위해 국민당은 만사에 있어 시시비비는 가리되 정국이 경색되는것을 막는데 주력하겠다』 고 국민당의 기본자세를 천명.
국회법개정문제에 대한 국민당의 태도를 보아도 이같은 입장은 잘 나타나 있다.
국회법을 개정해야한다는 명분에 있어서는 민한당과 전적으로 태도를 같이하지만 결과가 안될게 뻔하고 그렇다고 단호한 투쟁을 벌일 자세도 되어있지 않은 민한당의 대국민용 정치적 제스처에는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국민당의 태도가 민한당은 불만이다.
민한당측은 명분은 민한당을 따른다면서도 실제 행돔은 민정당에 동조하는 국민당의 역할은 구체제하의 유정회보다 더 거북하다는 푸념이다.
명분도 취하고 실리도 추구하려는 기회주의적(?)태도로는 정치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난도 퍼붓는다.
이에 대해 이동진국민당총무는 명분상. 민한당에 동조하려해도 민한당의 수용태세가 안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매사에 국민당을 제쳐놓고 민정당과 단독대좌만 꾀하니 어떻게 행동을 같이하느냐고 되받는다.
또 민정당과 친해야 소외당하지 않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 친민정태도는불가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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