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를 향한 자기 정화|김수영 문학을 재조명…유종호(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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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50년대, 60년대 한국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활동을 펴다가 지난68년 불의의 사고로 작고한 고 김수영 시인이 금년11월로 환력(환갑)을 맞는다. 이를 계기로 시와 산문등 그가 남긴
모든 글을 수록한 『김수영전집』 (전2권)이 출간되었으며 유족측은 그 인세액을 기금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제정, 평생을 문학에 바친 그의 정열을 되새기기로 했다. 김수영 시인의
환력과 그의 문학상 제정을 계기로 평론가 유종호교수는 김수영문학을 재조명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본사에 보내왔다. <편집자주>
우리에게 있어 이제 김수영은 단순히 한 시대의 시적 양심을 환기하는 고유명사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일체의 구속과 억압의 틀에 반대한 자유인이었고 파격적으로 정직한 자기
고발의 사람이었다.
사회의 거부가 시적 언어의 거부로 이어졌던 이 자유의 시인은 동시에 자기검열을 알지 못하였던 최단직선의 산문가 였다. 그는 또 꿈을 추구하고 불가능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가
장 서슴없었던 첨예한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김수영의 세상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수영 시 세계의 특징의 하나는 후기로 갈수록 현저하게 드러나는 소품적 완성의 완강한 거부다.
그의 시는 소품적 완성의 의도적인 훼손이 빚어낸 선혈로 흥근하다.
그것은 묵과할 수 없는 자기기만의 한 형태였고 현실의 왜곡이었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한 생활이 비겁하다고 경멸하지 말아라 뮤우즈여 나는 공리적인 인간이 아니다> 고 『바뀌어진 지평선』에서 그는 생활인으로서의 원죄와 시인으로서의 회한
을 말한다. 「타락한 오늘」 속에서 단정한 구문을 지닌 문법에 맞는 시를 쓴다는 것은 타락한 오늘과의 협상이요, 공모관계의 수난이요, 타락에의 자기 의탁이었다. 후기작품인 『어
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성』등 일련의 검열없는 자기절출의 작품은「타락한 오늘」에 들이대는 정직함의 노여움이다.
사회의 거부가 시적 언어의 거부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후기시는 반시적 충동의 간헐적인 폭발이기도하였다.
시인으로서 또 한사람의 지식인으로서 김수영이 가지고 있던 윤리적 충동의 하나는 무구함에 대한 갈망이다.
그것은 타락한 세계에서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었고 그의 반시는 그점 윤리적 상상력의 출혈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감정과 생활감정이 모두 무구함이라는 척도아래 동원되고 비판된다. 『예언자가 나지 않는 거리』에서 「바늘구멍 만한 예지를 바라면서 사는 자의 설움」을 만끽한 그는
『달나라의 장난』 『아버지의 사진』 『생활』 『국립도서관』등에서 그 설움을 진솔하고도 절제있게 노래한다.
요컨대 김수영의 시는 무구함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정화의 의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점 그는 모든 것을 드러냄으로써 건강에 도달하려고 한 스스로의 정신분석가 이기도하다.
김수영의 산문은 이상이후 일품이다.
새로운 언어의 작용을 통해서 자유를 행사한 흔적이 없는 글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느냐고 동료시인을 힐난할 때나, 거짓말이나 흐리터분한 말은 일체 하지 말라고 장남을 나무랄
때나 한결같이 서슴없고 늠름하다.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하고 빈들의 예언자처럼 울렸던 그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산문은 그의 시에 대한 신뢰할만한 자가해설이 되어 주면서 한 시대의 정갈한 양심의 극을 뜻깊은 문학경험으로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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