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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시간은 스스로 만드는것|독서의 계절이나 한가한때 찾다간 평생 책한권 못 읽는다|"일에 쫓겨 시간 없어서는 구실에 불과"|상사가 책 안 읽으면 후배들도 책 멀리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래 전 일이다. 그 당시 K씨는 중앙청 국장직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우리나라의 공무직이 강합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도 윗사람이 퇴청을 하지 않으면 밑의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자연히 늦게 마련입니다. 그 위에 비공식적인 회의가 자주 있지요. 동료들과 어울려 한잔씩 하는 기회가 자주 생깁니다. 거절할 수 없어 따라나서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곤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4, 5년 간 책 한권 읽지 못했지요. 머리는 자꾸 녹슬고 사무적인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신적 빈곤의 악순환은 거듭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크게 마음을 고쳐 먹었음이다. 정부의 고위층 지도직에 있으면서 아무 전문 지식도 없고 나 자신까지 정신적 빈곤을 느끼면서 살 바에는 공직을 떠나든지 자신의 성장을 꾀하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퇴근 하는 대로 집으로 직행했다는 것이다. 술을 끊어버리니까 .집에 일찍 들 아가면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아무 내용도 없는 텔레비전에 붙어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책을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세 달을 보내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잃어버렸던 독서가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1년쯤 지난 후에는 상당히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대학을 끝낸 뒤에는 손에 잡은바 없었던 외국어 책도 틈틈이 들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2, 3년의 세월이 지난 후부터는 지금 관심을 쏟고 있는 전문분야의 연구에도 뜻을 모을게 되었다고 한다.
『직장을 가진 사회인들이 흔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지요. 높은 직책을 말은 사람 일수록 더 바쁘다는 구실로 책을 멀리하는 것이 우리사의의 질정입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체험해보니까 그것은 완전히 구실에 지나지 앉았습니다. 문제는 결심과 실천이다 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 후 그는 어떤 도의 도백을 지냈고 여러 해에 걸친 지사 생활을 끝낸 후에는 중요한 장관직을 지냈다. 지금은 어떤 연구소의 책임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분의 고백은 옳다고 생각한다. 왜 독서를 안 하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못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다같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이 주어져 있거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의 계절이나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평생토록 책을 읽지 못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림으로 끝나고 만다.
10분이 생기면 10분을 읽고, 3O분이 생기면 3O분을 읽는 사람이 결국은 한시간도 읽게 되고 3시간도 독서를 하게 된다.
독서시간은 만드는 것이지 주어지지는 않는다. 만일 우리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30분씩만 책을 읽어 보라. 아니면 아침 일찍 일어나 30분씩만 독서에 바쳐 보라. 후에는 더 많은 책을 읽게 되고 간 세시간 독서를 하게 된다.
다른 일들을30분이 두시 연장될 수 있다 끝낸 뒤에 시간이 있으면 책을 읽어보자는 것이 직장인들 의사방식이다. 그 다른 일들이 무엇인가. 친구와의 잡담, 술좌석에서 보내는 길고 지루한 시간, 텔레비전 앞에서 낭비하는 시간들이다.
그런 일들을 독서보다 소중히 여겨서야 되겠는가.
또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직장이나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면 그 정신적 공백은 누가 책임을 지며 후배들까지 그렇게 살도록 이 끌어간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공부하지 않는 상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불행해진다. 그는 자신만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습관이 후배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영양이 모자라면 육체적 성장과 활동이 안 된다는 사질은 잘 알면서 정신적 양식인 독서와 공부를 포기한다면 자신의 정신적 빈곤은 물론 이웃과 사회에 대해서도 선한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된다.
특히 직장이나 높은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1년이 다 지나도록 한 두권의 책도 읽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면 열심히 공부하며 정신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후배들을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계속 느껴지는 스스로의 한계를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극히 당연한 의욕을 포기하고 있으며 자신의 정신적 생명과 지도력의 한계를 스스로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다.
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가. 독서를 하지 않으며, 인간적 성장을 위한 선한 노력을 경시하거나 포기하는 습관이, 젊은층이나 대중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각계 각층의 지도급에 있는 인사들에게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새로운 출발을 한다면 사회 전체가 새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20년 평남 출생 ▲ 43년 일본 상지대 철학과 졸업 ▲ 미 하버드대서 연구 ▲ 현 연세대 문과대 교수 ▲저서 『영원과 사랑의 대화』『오늘을 사는 지혜』『현대인의 철학』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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