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와 장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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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인의 대한관이 올바르지 않고 지나치게 비뚤어져있다는 점에 대해서 한국인치고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한반도의 역사를 통해서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었고 그것도 별로 달갑지 않은 이웃이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일제식민지시대의 가열한 폭력정치를 경험한 한국인으로서는 광복36년이 경과한 지금에도 결코 쓰라림을 지우지 못한다.
특히 한일수교이후 선린관계를 다짐하여 우호와 협력을 두텁게 하려는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참다운「이웃」의 의식은 두 나라 국민사이에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숨김없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뜻 있는 두 나라 지식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점에 주의를 환기하고 새시대의 양식과 우의를 되풀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건만 최근의 일본인들의 의식조사에서 나타났듯이 한국은 일본인들에게 있어「가장 싫어하는 나라」중의 하나요, 호감이 가지 않는 이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물론 최근에 급격히 나타난 성향은 아니며 과거 역사경험을 통해 학습되고 실습된 결과임에 틀림없다.
그간 일본인의 그릇되고 비뚤어진 대한관을 학습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해온 것이 교과서들이며,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의 각급 학교 교과서들이 과거의 제국주의적 우월감과 역사문화적 열등감의 표현으로서 수없이 한국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왜곡하였던 것은 하나의 관례였다.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우리의 국호조차「남조선」에서「대한민국」으로 고친 것이 79년의 일이요, 이때 비로소『수난의 실패가 풍신수길의 사망때문』만이 아니라 수군의 패배, 명의 원군, 조선민족의 격력한 저항때문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같이 일본이 뒤늦게나마 교과서의 잘못된 기술을 수정하여 한국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고 시도한 것은 두 나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매우 바람직하고 또 올바른 태도라 하겠다.
그러나 최근 보도에 의하면 개정판 고교 현대사회교과서에서 일본의 악의를 읽을 수 있는 고의적인 기술내용이 발견됨에 이르러 우리는 심심한 우려와 함께「우방」일본인들의 협량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본문부성의 교과서개정자료가 또다시 구태의연한 대한우월감에 근거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그릇된 한국관을 강요하고 있음이 논의의 여지없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지침엔 일본의 조선침략의 경위가 전혀 설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조선에서는 조선어와 함께 일본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었다』든가『나아가 신사참배도 장려되었다』는 식의 역사날조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일제가 대한식민지 침략을 합리화하고 한민족의 친일동화를 기본적 교육방침으로 하였음은 되풀이 설명할 것도 없이 식자라면 누구나 지실하는 일이다. 그들이 조선어의 말살을 획책하여 자행한 야만적 행패의 사실은 1백5인 사건을 보거나 학교교육의 현장에서 체험된 바다. 뿐더러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장려」의 차원이 아니라「강제」였음도 역사의 사실이 아닌가. 심지어 기독교의 목회자까지 끌어다 억지로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것이 일인권부가 아니고 누구였던가.
우리는 분명한 사실을 놓고 흑백을 가리자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대국」의 위치에 있고「우방」인 일본이 과거 그처럼 피해를 끼치고 모욕을 주었던 이웃에 최소한 진실과 성의로써 스스로 겸손하는 예의쯤은 차릴 줄 알아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자존자대하는 버릇은 한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니까 도저히 구제불능한 고질이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 일본에서 간행된「사회과교과서의 미일비교」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일본의 교과서는 미국 것보다 2배나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일본교과서는 미국의 인종차별은 다루면서 일인자신의 인종차별, 특히 재일한국인과 그 자손에 대한 차별대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일본교과서의 오류와 편견은 물론 이 같은 예증으로 전부 드러났다고 하긴 어렵다. 집어서 얘기하긴 어려우나 기본적으로 저류에 흐르는 악의가 더 문제일수도 있다.
우리는 일본문부성의 교과서개정자료에 나타나 있는 그 같은「악의」를 읽으면서 일방으로「우방」일본에 대해 섭섭함을 금할 수 없으며 아울러 이런 사태에 이르게 한 우리 자신의 부족을 참괴하기도 한다.
바라기는 일본정부당국이 참다운 선린의 정과 양식의 근거 위에서 하루 빨리 그 같은「악의」를 씻고「오류」를 광정하길 당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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