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투기지역 지정制] 40일 지난 정보로 뒷북 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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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새미래 아파트 38평형 시세는 2억3천만~2억8천만원선. 지난 2월 말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후 1천만원 이상 올랐다. 유성구 코아공인 박종득 사장은 "투기지역 지정으로 양도소득세가 실거래가로 부과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간혹 나오는 매물도 세금 증가분만큼 호가가 올라갔다"고 말했다.

천안부동산컨설팅 김진수 사장은 "투기지역 지정 후 매물이 줄어든 반면 고속철도.수도권 전철 개통을 앞두고 투자자가 꾸준히 몰리는 바람에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투기지역 지정해도 계속 상승=대전시 서구.유성구와 천안시의 집값은 2월 말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뒤에도 계속 오르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천안시의 주택값은 1월 3.5%, 2월 4% 오른데 이어 투기지역 지정 이후인 3월에는 5.1% 상승했다. 김종필 세무사는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내더라도 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수원시 한빛공인 유원태 사장은 "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인근 화성지역의 개발 붐이 계속되는 한 투기지역 지정 여부에 관계없이 투자자들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1가구 3주택 이상 소유자나 1년 이내 단기 양도자는 이미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내도록 돼 있어 투기지역 지정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허술한 투기지역 운영=올 들어 세차례 열린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는 주택 투기지역 후보 15개시 중 대전시와 천안시 등 단 두 곳만 지정했다. 정부는 이들 지역의 부동산 값 상승이 계속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우려가 낮아 투기지역 지정을 유보한다고 밝혔지만 다분히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앞으로 값상승세가 계속될지를 판단할 기준이 없어 사실상 주관적으로 지정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40일이나 지난 부동산 가격통계를 갖고 심의를 하기 때문에 뒷북 대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25일 열리는 4차 심의위원회에서는 국민은행이 3월 15일 조사한 통계를 갖고 심의한다.

그동안 구(區)단위의 정교한 가격 통계가 없었던 점도 투기지역 지정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대전시도 시 전체 통계만 있고 구별 통계가 없어 별도 실태조사를 벌인 끝에 2월 말에 서구.유성구만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동구.중구.대덕구는 지정하지 않았다. 재정경제부는 서울과 인천.고양.성남시는 이달부터, 다른 시는 오는 7월부터 구 단위 지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기지역 지정은 민간위원이 포함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해 발표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정부가 미리 정해놓고 위원회라는 요식절차만 갖추는 것 같다는 불만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심의위원은 "정부가 회의를 시작할 때 자료를 주고 끝나면 회수해간다"며 "지역 사정을 감안해 이것 저것 검토해봐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정부의 들러리를 서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투기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선 투기지역 지정을 강화하고, 아울러 "강력한 세무조사"(김종필 세무사)와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는 투기과열지구 확대"(RE멤버스 고종완 사장)를 권고했다.

고현곤.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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