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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 순조로왔지만 궤도진입 미지수|「레이거 노믹스」미국경제의 거대한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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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가 해내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이며 지금하지 않으면 언제 할 것인가. 이대로 가다간 파국이 뻔한데 힘들다고 물러설 것인가.』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미「레이건」대통령은 각료들을 소집, 「작은 정부」의 실현에 필요한 세출삭감을 위해 첩첩이 가로놓인 난관을 헤쳐나갈 새로운 결의와 대책을 강구하라고 다그쳤다.
출범 이후 2백일이 지났고 가슴에 총탄이 박혔었던 충격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칠순노인「레이건」은 여전히 정력적인 추진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레이거노믹스」라고 지칭되는 경제정책의 성패여부는 단순한 그의 정치생명 차원을 넘어서 미국경제의 거대한 실험으로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결과가 어찌될 것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레이건」의 이같은 경제정책은 뉴딜 정책을 폈던 「루스벨트」이후 최대의 모험적인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50년 동안 흘러온 미국경제의 물줄기 자체를 바꿔놓겠다는 시도다. 「레이거노믹스」의 요체는 한마디로 말해 감세 정책을 통해 침체의 늪에 빠진 불황경제를 구출해내고 고질인 인플레도 함께 퇴치하겠다는 그야말로 최선의 이상을 주저 없이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막강한 미국의 산업력을 되살려 위대한 미국을 다짐하고 있다.

<국방비 등 대폭 칼질>
숱한 비난과 우려에 비해서는 기대이상이랄 정도로 순탄하고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다.
압도적인 지지로 의회에서 감세안이 통과된 것을 비롯해 기업들의 극에 달한 신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없던 고금리정책을 계속해 나오고 있다.
경기회복 면에서는 아직 뚜렷한 호전의 조짐은 없지만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고 기승을 부리던 물가는 상당히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국제금융시장에서 괄시를 받던 달러화는 금년 들어 다른 주요국 통화에 비해 36%나 올라 미국민의 자존심을 크게 고무시켰고 덕분에 수입물가도 싸졌다. 금본위제로의 회귀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감세 혜택을 줘서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진작시키고 공돈을 믿고 일 안하는 저소득층에는 사회보장제도를 줄여서 제힘으로 열심히 벌어먹게 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경제의 고장은 미국민이나 기업 자신의 나태와 제도상의 잘못 때문에 기인된 것이라는 확신이고 이를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작은 정부」의 강력한 추진자인 「스토크먼」예산관리국장은 국방비·사회보장비를 비롯한 지출 예산에 무자비한 칼질을 하고 있다.
과연「레이거노믹스」의 이같은 청사진이나 소신대로만 된다면야 미국경제는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반론 역시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느냐, 나라경제가 무슨 화학실습장인줄 아느냐 등의 신랄한 비난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경제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의 실력자들은 고금리에 따라 계속되는 주가하락을 못마땅해하고 있으며 노조의 총본산인 AFL-CIO측은 전국적인 시위운동을 부추기면서 「레이건」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놓고 있다.
반대론자들이 지적하는 첫번째 시비 거리는 역시 감세 정책에서 출발한다.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하지만 우선 당장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적자가 불가피한데 다른 한쪽에서는 인플레를 찾겠다고 단단히 돈줄을 죄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금리만 잔뜩 올려 오히려 기업들의 금리부담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 쪽에서는 내년도 재정적자가 4백25억 달러 정도에 그칠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반면 의회쪽의 계산으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6백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팬암사도 타격 심해>
그동안 미국경제를 지배해온 전통적인 케인지언들의 비판은 더욱 날카롭다. 「갤브레이드」교수 같은 이는 『「레이건」행정부는 한 손으로 확대정책을 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긴축정책을 펴나가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모순은 신의 간섭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비꼬고 있다.
금년 들어서 벌써 1만1천76개의 기업들이 도산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나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에는 굴지의 팬암 항공사까지 뿌리째 흔들리고 있을 정도다.
금년 상반기 동안만 따져 2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팬암은 지난해 맨해턴의 본사건물을 4억 달러에 팔아치운 것을 비롯해 지난 8월에는 97개의 체인을 가진 인터내셔널호텔까지 5억 달러에 팔아버렸다.
우리 식으로 말해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계열기업이나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고 있는 셈이다.
콧대높은 미국의 대기업으로서는 무척 위신이 상하는 일이지만 워낙 절박한 상황으로 몰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긴축고삐 안늦출 듯>
이같은 고행 속에 기업들은 고금리의 고통을 끈질기게 호소한 결과 지난달 재무장관「리건」으로부터 긴축정책을 다소 완화하겠다는 언질을 겨우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달 들어 프라임 레이트가 조금씩 내림세를 보이고 있고 이런 추세라면 연말께는 17%선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긴축의 고삐가 풀릴 것이라는 징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고집쟁이「볼커」가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버티고 앉아있고 「레이건」까지 잘한다 잘한다 하고 있는 판이니 말이다.
처음 취임하면서 『1년하고 말 긴축은 아무 쓸모 없는 정책』이라 밝힌 「볼커」의 외고집(?)은 현재로서는 정부의 응원까지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대체 미국경제는 무엇을 근거로 「레이건」의 이같은 굽힘 없는 배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가.
소위 말하는 「레이거노믹스」가 정말 이론적으로 나무랄데 없는 최선의 것이라서인가, 정치가로서의 「레이건」의 개인적인 인기 때문인가.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지지하는 사람 못지 않게 반대하는 사람이 많고 미국경제의 양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와 AFL-CIO조차 반대의 입장에 서있다.
사실 새로운 공급경제학의 시도로 일컬어지는 「레이거 노믹스」는 정립된 이론적 체계를 인정받은 것도 아닐뿐더러 무슨 신학설은 더더구나 아니다. 구태여 학문적으로 근거를 끌어 붙인다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조한다』고 말한 「세이」의 이론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민들 지지는 대단>
「레이거 노믹스」의 현실적인 창시자는 「아더·래퍼」교수(남 캘리포니아대)로 꼽힌다.
그가 『과중한 세금이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인플레도 공급보다 수요가 앞서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니까 세금을 깎아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이른바 공급경제학을 처음 제창한 것은 74년 겨울 저녁 어느 레스토랑에서 유력한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면서였다.
「래퍼」의 이 지론은 77년에야 정치적으로 빛을 보기 시작해 3년 동안 소득세를 33% 깎자는 감세안이 의회에 상정됐으나 보기 좋게 부결 당했다.
당시로서는 난센스로 받아들여졌던 이 감세안은 3년 뒤 「레이건」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힘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과연 그가 약속대로 정부예산을 줄이고 세금을 깎아줄 수 있을까 하는 점에는 많은 의문을 표시했었다.
그동안 아무도 엄두를 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여겨왔었기 때문이다.
처음 감세안을 의회에 내놓았을 때도 비관론이 지배적인 듯 했으나 실제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압도적인 지지였었다.
「레이거 노믹스」에 반대입장을 고수하는 측에서조차 이론적으로는 물론 반대하나 현실적으로 최소한 지금까지는 예상 밖의 지지를 국민들로 받았음을 시인하고 있다.

<양키즘의 부활이다>
「레이건」자신도 그의 경제정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듯이 언제 어떤 난관에 부딪쳐 좌초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나마 지탱해온 「레이거 노믹스」의 힘은 그것이 훌륭한 경제정책이어서가 아니라 미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으로 봐야할 것 같다.
77년 당시 의회에서 부결 당했던 감세안은 「레이건」이 가지고 나갔어도 마찬가지 망신을 당했을게 뻔하다.
80년대라는 경제상황, 도저히 종전과 같은 처방으로는 안되겠다는 변화의 요구가 「레이거 노믹스」의 밑천인 것이다.
커지기만 해온 정부에 국민은 식상하게 되었고 대책 없이 춤추고 있는 인플레에 어쨌든 새로운 처방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만년 1등국일줄로만 믿었던 것이 해외시장의 곳곳에서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고 해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유일한 나라라는 치욕적인 불명예까지 안게 된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보수주의의 득세는 단순한 경제정책면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는 양키즘의 부활이나 머조리티 계층의 힘의 회복노력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미국사회에서만이 가능한 거대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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