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국, 국제 금융국에 판정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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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군살빼기」 로 통칭되는 행정 각부처의 기구축소 정비작업은 각부처의 입장에서 보면 생살을 도려내듯 힘든 일이다.
자체 기구정비안 제출이 며칠 유보됐던 외무부를 포함해 35개 부·처·청이 19일로 모두 총무처에 개편안을 제출했다.
각부처 조정안에 대한 총무처의 1차 심사결과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판정. 그래서 내주부터는 각부처와 재조정을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이렇게 흡족하지 못한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과연 어느 국을 정비대상으로 삼겠느냐를 놓고 별의별 뒷 얘기가 나오고있다.
○…1국을 없애야하는 건설부는 어느 국을 줄이느냐를 놓고 고심 끝에 잡음을 없애고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에서 본부 국장급이장에게 무기명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결과 없애야할 국의 순위는ⓛ 토지국 ② 상하수도국 ③ 산업임지국순으로 나타났다. 제출마감전일 까지만 해도 토지국이나 상하수도국이 없어지는 걸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산업임지국으로 결정됐다.
그 배경을 놓고 이국의 업무가 상공부와도 관련이 깊기 때문에 이종의 피가 섞인 국으로 속죄양을 삼았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1국을·없애야하는 재무부의 경우도 대상으로 부상된 재산관리국과 국제 금융국의 국장이하 전 직원이 서로 살아남으려는 여론조성 로비활동을 벌였다.
국제 금융국은 국제화시대에 대비하고 외자를 더 많이 빌어와야하는 입장을 ,재산관리국은 방대한 국가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한다는 것을 존속명목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는 재산관리국의 판정승.
○…기획관리실장이나 차관선에서 조정이 안돼 장관이 최종 재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농수산부의 경우 담당관격인 농업기획관과 수산조정관 중 어느 것을 없애느냐가 문제였다. 수산조정관은 수산청과 수협이 일을 대신할 수 있으므로 농업기획관을 살리자는게 부내의 기류였다.
그러나 고건장관이 수산문제를 보좌해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수산조정관이 살아남고 농업기획관이 없어지게 됐다.
12국 중 3국을 중여야 하는 외무부도 외신문서국을 없애고 통상국과 국제경제국을 통합하는데까지는 무난히 넘어갔다. 그러나 조약국을 없애느냐, 아프리카국과 중동국을 통합하느냐를 놓고 진통을 겪었다.
기구축소 7인소안의 대세는 남북대치상황에서 지역국을 통합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나 위원장인 차관과 조약국장관은 외무부 고유업무인 조약국을 없앨 수 없다고 주장해 총무처와 타협을 해보기로 했으나 노신영장관의 단안으로 조약국이 없어지게 됐다.
○…기구축소에는 결국 감원이나 대기발령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무드때문에 어느부처나 해당자들은 걱정이 태산.
기구축소를 겨냥하고 이미 부리사관급의 인사를 단행했던 서울시는 국장급뿐 아니라 본청 77개과 중 27개가 정리된다는 소문에 고령과장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2국 4과가 없어지는 보사부는 가뜩이나 심한 인사정체를 겪는 판에 승진기회가 더 좁아져 사기가 떨어질까 걱정.
천명기 장관은 『공무원의 사기가 떨어지면 정부의 권위가 떨어지고, 정부의 권위가 떨어지면 국가의 권위도 떨어진다』 며 간부들에게 부하들의 사기진작에 힘쓰도록 특별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체신부의 경우는 내년에 발족되는 한국전기통신공사로 3국이 떨어져 나가고 대신 2개국이 신설되고 1개외국이 본부로 들어와 현재의 「1실5국」 이 그대로 유지되게되어 느긋한 분위기. 그리나 국신설등에 따라 다른 부처의 국·과장들이 체신부쪽으로 밀고 들어올까봐 미리부터 외인부대 침입을 경계하고 있다.
기구가 없어지면 자연인에도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라 그에 따른 화제도 갖가지다.
내무부의 지방행정연수원부원장 (이사관) 자리가 없어지자 이해권 연수기획관은 복직 3개월만에 다시 자리를 잃게될 위기에 놓여 주위의 동점을 샀다.
이씨는 7년전 충남부지사 재직때 사생활 문제로 면직됐으나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지난 7월 복직발령을 받았던 것.
한편 기구에 손댈 데가 적은 내무부와 법무부는 타 부처와는 대조적으로르 느긋한 태도들.
내무부의 한 인사관계자는 『과가 많아 일 처리도 중복되는 들 번잡했는데 오히려 잘됐다』 고 할 정도로 타격이 전혀 없다. 법무부의 경우도 없어질 과의 과장들이 부장검사급들이어서 이들은 오히려 『일선 검찰청으로 전보될테니 개인적으로는 잘되는 길』 이라고 은근히 통합을 바라는 사람 마저 없지 않다.
○…각 부처의 자체기구 정비안을 수집한 총무처는 17일 1차 스크린 끝에 △ 성의를 보인 부처 △ 아직 미흡한 부처 △ 전혀 성의가 없는 부처로 분류, 성의를 안보인 부처부터 차례로 불러 재조정을 촉구할 방침이다.
총무처의 관계자는 『각 부처가 1차안을 낼 때 타 부처의 분위기를 모르기 때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적당히 만들어온 예가 많다』 고 지적. 그는 기준에 맞게 해온 부처를 제의하고는 조정안을 되돌려 보내 다시 각성해 오도록 할 방침임을 비쳤다.
관계자는 각 부처에 자기 집을 설계해 오도록 맡겨놓았더니 어느 부처는 1층집도 족한데 2층집을 만들어 오고 심지어는 3층집까지 만들어 왔다고, 비유하면서 적당한 집을 다시 설계하도록 종용하되 끝까지 버티면 최종 결정권자의 결심을 구할 수 밖에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여러 부처가 업무의 특수성을 내세워 예외적인 적용을 총무처에 부탁해오고 있다. 그러나 어느 부처는 봐주고 어느 부처는 못 봐주고 할 계제가 안돼 무조건 기준에 의해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키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1차 집계로는 당초 중앙부처 국장급이상 2백32개직을 없앤다는 목표에 훨씬 못 미친다.
따라서 총무처는 각부처가 이미 내놓은 안을 기안으로 보고 내주부터 각부처와 본격적인 재조정을 하기 위한 임전태세를 가다듬고 있다. ...... <정리=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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