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반년동안 뭘 했나|11대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알아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소수의 무소속의원도 있지만 대부분 국회의원에게 있어 정당없는 정치는 생각하기 힘들다. 의원들이 바라는 거의 모든 것, 요직·발언기회·외국여행·상위선택은 물론이고 의원배지를 다시 다느냐 못다느냐와도 관련되는 공천문제 등이 모두 당에 달려있다.
따라서 당과 의원의 관계는 정도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당명하복」일수 밖에 없고 의원들의 의사나 입장은 당이 선택적으로 받아 줄뿐이다.
다만 당의 의사결정과정에 의원들은 참여하게 마련이고 그 참여도는 의원이 가진 당직이
나 영향력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당이 의원들을 장악하는 정도, 즉 기강문제와 의원들이 당론결정에 참여하는 정도, 즉 당내민주주의문제는 대체로 역비례관계에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제5공화국 정계에서도 집권당은 기강이 엄한 반면 당내민주주의가 약하고, 민한·국민당 등 소수당 쪽엔 그 반대현장이 나타나고 있다.
민정당의 경우 의원들은 당명에 철저히 따라야 하고 어길 경우 상응하는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아직껏 의원이 당규에 의해 정식으로 징계당한 일은 없었지만 비공식 경고를 받은 케이스는 없지 않다. 지난번 돗자리사건 관련의원들이 당직을 물러나고 이재형대표위원으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은 것이 한 예다. 지난 여름 지방에서 열린 당의 한 행사에서 두어명 의원이 동료의원을 손찌검한 일이 있었는데 그후 관련자에 대해서는 권정달사무총장이 비공식적으로 경고를 주었다.
민정당 에서는 『의원은 당의 파유원』이란 말까지 나왔다. 의원은 개인 의사가 아닌, 어디까지나 당의사를 대변하고 추진하는 파견원이란 뜻이다. 이 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갖은 고생을 해가며 수만명 유권자의 지지를 받아 당선돼 올라온 의원들로서는 서운하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이 말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나선 의원은 없었다.
지난 5월 민정당의원총회에서 일부의원이 당사무국을 비관하는 듯한 발언을 한적이 있었으나 이 의원들이 당간부의 「걱정」을 듣고부터는 의원총회가 열려도 색다른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돗자리사건을 마무리지은 후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누구도 발언을 않자 이대표위원이 『질문 좀 하라』고 권했으며 그래도 질문이 없자 『나도 의원이니 한마디하자』고 나선 일도 있었다.
이처럼 민정당의원들은 당명에 순응하면서 잡음없이 당론을 따르고 있으나 당의 결정을 전원이 진심으로 무조건 찬성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많은 의원들이 당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간부들이 의원들의 소외감을 덜기 위해 골프·회식·간담회 등의 기회를 수시로 마련했지만 소외감이 다 없어지기는 어려운 형편.
얼마전 당중앙집행위에서 Y의원이 『당론, 당론하는데 당론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모르겠다. 의원들의 의견이 충실히 종합돼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도 이론 배경에서다.
선거구민을 의식하거나 자기판단으로 미루어 의원이 당론과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예컨대 각종 요금인상에 대해 당론은 늘 「정부측 보고청취-승인」으로 나왔지만 의원중에는 요금인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교육세신설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민정당의원이 적지 않은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표-선거구민의 여론 등에 따라 의원들은 인기있는 발언을 하고싶지만 집권당 소속이기 때문에 자제해야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의원으로서는 대정부공격도하고 싶고 그러면 인기가 올라가는 것도 알지만 민정당원이기 때문에 또 「인기발언」이란 눈총 때문에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강이 엄한데 따라 당내민주주의에 대한 의원들의 잠재적인 욕구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모의원은 『다양한 인물들을 모았으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다양한 의견 중에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린다는 방식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아직은 민정당에 그런 예는 없다고 보지만 과거 공화당에서는 인기없는 당론을 따르다가 다음 선거에서 손해볼 걸 걱정하는 의원들이 적지 앓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민한당이나 국민당의 사정은 민정당과는 대조적이다. 의원들의 당내발언은 자유롭고 회의만 열리면 토론도 활발하다. 소속의원이 당론과 정면 배치되는 입장을 취한 예는 없었지만 당결정사항에 대한 비판도 어느 정도 자유롭다. 당의 의사결정도 소수간부 중심의 형태이긴 하지만 소속의원들의 참여폭이 넓다.
반면 기강은 약한 편이다. 가령 후원회구성에 관해 민한당의 당론은 몇차례 엎치락 뒤치락했고 이 과정에서 소속의원간에는 당입장과는 상관없이 공공연한 찬반론이 끊이지 않았다.
교욱세 문제에 관해서도 문공위소속의원과 재무위소속의원간에 이견이 있었는가 하면 문공위의원과 당정책위간에 손발이 안 맞은 일도 있었다. 민정당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민정당에서는 원내발언도 당에서 문제삼은 일이 있지만 소수당의원들의 원내발언은 당입장보다는 거의 「자기작품」인 경우가 많다. 지구당관리에 있어서도 민정당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지만 민한당이나 국민당의원들은 「자기식」으로 한다. 발언이나 출국기회가 돌아오지 않거나 요직경합에서 탈락할 경우 노골적인 불평을 감추지 않으며 때로는 「비협조」로 나가는 수도 있다.
당지도부에 대한 호칭도 민정당 의원들은 사석일지라도 비교적 점잖지만 소수당의원들은 gms히 경칭생략으로 나간다. 『나도 국회의원, 자기도 국회의원』이란 1대1의 의식이 의외로 강하다.
K모 간부 같은 이는 사실상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정당을 택한 사람도 없지 않기 때문에 당원으로서의 애당심과는 거리가 먼 인물도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선거 때 국민당의 여성향으로 알려진 L, Y씨 등은 대통령후보를 내면 탈당하겠다고까지 주장한 일이 있었다.
민한당의원 중에도 당이 야당성을 좀더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태수의원 같은 이는 『당공천으로 당선된 만큼 당론을 따라야겠지만 유권자의 주문과 상치될 때는 나 자신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의석 1, 2개를 가진 군소정당소속의원들에겐 당원의식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의원은『20만원 주고 공천장 사러 가보고는 아직 한번도 당사에 안갔다』고 한다.
대체로 당의 기강은 당이 의원에게 얼마만큼 해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공천·당선·정치자금·감투·기타 기회 등의 제공을 당이 많이 할수록 기강은 엄해지고 재공할 수 없을수록 기강은 떨어지는 것 같다.
기강이 엄할수록 의원입장과 당원입장간에는 괴리가 생기고 약할수록 의원은 당입장에 구애받지 않는다.
의원입장과 당원입장의 조화, 기강과 당내민주주의의 조화문제는 각 당의 공통된 과제일수밖에 없다. <끝>

<송진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