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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의 후손들(9)|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조부묘역 공원 만드는 게 소망|혼기 놓친 세 누이 도움으로 신학공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독립군 부사령관으로 강양 주둔 일본 수비대를 대파하고 광복군 총사령관으로 일본군을 골탕먹인 지청천 장군의 친손들은 대지23평에 건평11평의 조그마한 한옥(서울녹번동151의22)에서 지내고 있다.
서울출신인 지 장군은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장남 달수 씨는 19세 때 『우리 집 대가 끊기니 너만은 독립운동을 하지 말라』 는 지장군의 만류를 뿌리치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가, 슬하에 3남3녀를 두고 69년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는 여순 반란 사건 때 전사했다.
장녀 선형씨는 3형제를 두고 해방직후 사망했고 2녀 복영씨(61·부산시초량6동754의197) 는 광복군의 여군으로 선친을 따라 한일전에 나섰다가 지금은 부산 화교학교의 한글선생으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지 장군에게 생존하는 혈육으로는 복영씨 외에 장남 달수씨의 자녀이자 친손인 상룡씨 (26)의 6남매뿐이다.
총학신학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신학연구원(대학원과정)1년에 재학중인 지장군의 장손 상룡씨는 신학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아래로 동생 상우군(24)은 제대하고 대입준비 중이며 상철군(21)은 한양대2년 재학 중 입대해 복무 중이고 위로 누나 승남(34)·중남(32)·상원(희사원)양 등 셋은 선친 달수씨가 12년 전 세상을 떠남으로 해서 가계를 돌보느라 그만 혼기를 놓친 채 가사를 돌보고있다.
상룡씨 남매는 할아버지와 선친에게 나오는 연금 (매월 20만2천원) 과 상원양이 받는 월급으로 어머니 김용자씨(57)와 함께 겨우 생활을 꾸려 나가고, 상룡씨의 학비를 대고있다.
묘역이 넒고 규모가 커 가족들이 어려운 살림에 관리하기에도 손이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상룡씨는 『조부의 묘역을 공원화해서 관리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소망』 이라고 했다.<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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