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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다리 실버 같은 해적, 실제로도 있었을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홍주연
박신영 작가

피서지로 인기 많은 바다. 지난 방학 바다에 다녀온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바다’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 중엔 해적을 빼놓을 수 없다. 해적 이야기의 고전으로 전형적인 해적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 있다. 1883년 처음 출판된 스티븐슨의 『보물섬』이다. 하지만 해적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보물섬』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해적들이 약탈하는 물건들은 금·은·보석이 아니라 대개 일반 화물이었다. 곡물 등은 부피도 크고 금방 상해 오래 숨겨 두지 못했다. 해적들은 근처 항구로 가서 바로 화물을 팔고 흥청망청 노는 데 돈을 다 쓰곤 했다. 그들에겐 저축 습관이란 없었기에 운 좋게 귀금속을 손에 넣었더라도 먼 무인도에 묻어 두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앵무새를 데리고 다니는 외다리 요리사’라는 캐릭터는 매우 사실적이다. 그런 인물은 해적은 물론, 일반 선원들 사이에서도 많았다.

“그 때, 한 사나이가 안방에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첫 눈에 그가 존 실버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는 왼쪽 다리가 없고,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동작은 놀랄 만큼 재빨랐습니다.”

『보물섬』의 존 실버는 과거를 숨기고 히스파니올라 호에 요리사로 취직한다. 플린트 선장의 보물을 얻기 위해서였다. 면접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다리를 잃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유명한 해적 플린트의 배에서 조타수로 일할 때 포탄에 맞아 왼쪽 다리를 잃었다. 이 경우 대개 나무 의족을 달곤 했지만 그는 목발을 짚고 다녔다.

실버의 외다리는 허구적 장치가 아니다. 해적들은 심하게 다치는 일이 많았다. 상처 입은 팔다리가 썩기 시작하면 톱으로 잘라내고, 도끼를 불에 달궈 지혈 겸 소독 삼아 절단 부위를 지졌다. 이런 끔찍한 수술을 이겨낸 뒤엔 나무 다리를 달고 살았다. 손이나 팔의 경우에는 갈고리를 달기도 했다. 해적뿐만 아니라 일반 선원들도 항해나 전투 과정에 불구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영국 해군은 선원 복지 제도의 한 방법으로, 외다리가 된 선원을 요리사로 삼아 배에 태워주는 것이 관례였다.

요리사 실버의 조수가 돼 주방에 들어간 짐은 ‘플린트 선장’이라 불리는 앵무새를 본다. 이 또한 사실적이다. 뱃사람들이 기념품으로 열대 지역 동물을 데려 와 키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가장 많이 키우는 건 앵무새였다. 기르기 쉽고, 사람의 말을 흉내낼 수도 있어서다. 수명이 긴 대형 앵무새들은 주인을 따라 떠돌면서 영어·네덜란드어·스페인어 등 몇 개 국어를 구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4개 국어를 해 봤자 욕이 대부분이었다고는 하지만. 유럽에선 드문 화려한 깃털을 가졌기에 비싸게 팔렸고, 그래서 선원들의 투자·비상금이나 선물, 항구의 관리에게 주는 뇌물로도 환영받았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갔다. 인천 공항을 이륙한 후 대여섯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승무원들이 통로를 오가며 무언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공짜다! 좋아하며 받고 보니 커다란 스티커였다. 열대 야자수를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앵무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맨 위에는 ‘적도 통과를 축하합니다!’라는 영어 문구가 인쇄돼 있었다. 아, 적도가 있는 열대 지역의 상징이 여전히 앵무새라니! 어릴 적 읽은 『보물섬』이 생각나 가슴이 뛰었다. 나는 앵무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플린트 선장.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박신영『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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