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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년 맛의 깊이 국물 반 고기 반 진짜 나주곰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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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호 28면

나주곰탕은 국물에 밥을 ‘토렴’해서 말아준다. ‘국물 반 고기 반’이다. 수육도 일품이다.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 역사가 아주 오래된 음식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100년 정도 된 곳은 쉽게 눈에 띄고, 200년, 300년이 넘었다는 집들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음식점이 무려 1만5000개에 이른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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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은 오랜 세월 동안 손끝으로 전해져 온 내공이 있어서 뭐가 달라도 다르다. 아주 작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반응하고 차이를 느낀다. 역사와 세월의 두께가 만들어 낸 아우라가 주는 감동은 덤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대를 잇는 것을 당연시했던 사회다. 한 번도 대대적인 외세의 침략을 받은 적이 없었던 안정적인 사회 환경 덕분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단 두 곳뿐이다.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결과다. 근대에 들어와서 격변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한 자리에서 무언가를 끈기 있게 오래 할 수 있을 만큼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머무르기보다는 움직이고 변신해야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온 귀한 두 곳은 바로 서울의 ‘이문설렁탕’과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나주곰탕집, ‘하얀집’이다. 두 곳 모두 좋아하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하얀집’은 내가 오랫동안 단골로 아끼는 곳이다. 멀어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 갈 때면 일부러 들리곤 한다. 그쪽을 여행하는 분들에게도 항상 추천 1순위다.

나주는 원래 물산이 풍부한 전라남도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나주관아 앞에서는 예로부터 ‘매일장’이 열렸다. 이 장터에서 고 원판례 할머니가 자리를 잡고 곰탕을 끓여내기 시작한 것이 1910년의 일이다.

그러다가 4대를 내려와서 지금의 길형선(54) 사장이 맡게 된 것이 딱 백 년이 지난 2010년이다. 길 사장은 원래 국영 공공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던 분이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아버지를 도와 고기 사오는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틈틈이 일을 거들면서 고기 손질하는 법, 끓이는 법 등 가업을 익혀왔다. 부친이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시게 될 무렵에 명예 퇴직을 하고 ‘하얀집’을 물려받게 되었다.

이곳은 나주곰탕이라는 이름 자체를 만들어 낸 곳이니 그야말로 원조인 셈이다. 평야 지대여서 농사를 짓느라 소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쇠고기를 이용한 곰탕을 만들어 팔게 되었는데, 음식 이름을 뭐라고 붙일까 고민하다가 지역 이름을 따서 나주곰탕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하얀집’에서 곰탕을 먹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국물이 진짜 끝내 준다는 것이다. 기름기가 거의 없고 아무 잡미가 없이 깔끔한데 그 맛이 깊이가 있다. 마치 우리 입맛에 맛있고 몸에 좋은 성분만을 골라서 농축시킨 듯 하다. 비어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 완벽한 국물 맛이 구수하고 감칠 맛이 넘쳐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 비우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다. 부드럽게 잘 삶아서 두툼하게 자른 고기는 적당히 쫄깃거리면서 입안에서 풍성하게 씹힌다. 양도 푸짐해서 거의 ‘물 반 고기 반’이다. 이러니 이 지역에 오게 되면 안 들릴 재간이 없다.

길 사장이 얘기하는 맛의 가장 큰 비결은 신선한 쇠고기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루 전에 도축한 고기를 확보해 국물을 끓이는데 그렇게 해야 맛도 신선하고 오래 끓일 수 있다고 한다. 도축한 지 며칠이 지나게 되면 이미 육질이 물러져 짧게 끓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 깊이 있는 국물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맑고 깔끔한 맛의 국물을 내기 위해서는 함께 삶는 고기 부위들의 비율을 잘 맞추고 사골을 함께 끓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매일 새로 국물을 끓여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고기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손질하는 것, 그리고 끓이는 과정 전체를 길 사장이 매일 직접 하고 있다. 앞선 선대 분들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100년의 내공이란 역시 대단한 것이다. ‘하얀집’의 완벽한 곰탕 맛이 증거해 준다. 말이 쉽지 한 세기를 지내온 것이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 세 번째 집이 나온다. 그리고 또 계속 나올 예정이다. 100년 되는 해를 맞춰서 친구들과 그 식당들을 한 번씩 찾아가 봐야겠다. 느낌도 다르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벌써 기대가 된다.

▶하얀집: 전라남도 나주시 중앙동 48-17 전화: 061-333-4292. 첫째, 셋째 월요일은 쉰다. 휴일에는 줄을 서서 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나주곰탕 8000원, 수육 3만원.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여행전문가.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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