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서|돗자리 한 장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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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세칭 「돗자리사건」 이 우리들에게 준 첫 인상은 「무관심」 에서 「묵살」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는데 그 흐름의 저변에는「불신」이라는 것이 짙게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런 중에서도 저마다 한마디씩 뱉어내기도 했는데….
『아니 그 정도의 수준에 있는 분들이 이 돗자리 한 개로 뭐가 되겠어?』라든가, 『그분들에게 준 그 선물이라는 것이 아직 본인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니, 그런 미미한걸 들추어내서 어쩌겠다고?』라고 하는 냉소파도 있는가 하면, 『도대체 알지도 못하고 친분도 없는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돗자리를 사서 나누어 준 그 기관의 사람들이 교육자들이라는 게 한심하지. 그 저의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구』 라고 하는 분개파도 있는 것 같았다.
나도 가끔 선물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선물을 받는 마음도 그렇지만 하는 마음은 더욱 힘들고 조심스런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순수하게 물건을 통해서 전달이 될 것이며, 받는 쪽에서도 조금도 부담 없이 수수하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선물을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만큼 선물을 주고받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평소의 우의와 정이 깔려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돗자리」사건도 웬만하면 우리들의 그 「관대」 와 「여우」의 탈을 쓴 피곤함 때문에 그냥 얼렁뚱땅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젠 세상이 그럴 때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 같다.
도대체 그 동안 우리들에게 흐르고 흘러서 괴었다가, 이제는 딱딱해서 티눈처럼 둔감해 진, 어떤 고질적인 사고의 한 본보기로서, 이제 수평을 바로잡아 동서남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우리의 그 지성의 나침반은, 너무 때가 끼고 먼지가 앉고 낡아서 아주 내던져버리면 깨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분해소제를 하기에는 너무 병약해 버린 것이나 아닌지, 판단을 해야하는 우리들 가치의 거울에도 안개만 서려있는 것 같음을 어쩌랴.
문득 에피소드 한가지가 생각난다. 이조 세종 때의 이름난 청백리였던 정갑손 이란 분은 당시 함경도 감사라는 관직에 있었는데 과거시험을 주관했던 고로 합격자발표를 하게 되었었다.
방을 붙여놓은 벽보에 정공의 아들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본 그는 노발대발해서 시험관을 불러들여 놓고는 『내가 알기로 내 아들놈은 학업이 부족해서 도저히 합격권에 들지 못함을 알고 있는데 자네가 내게 아첨하느라고 그놈을 합격시켜서 임금과 국민을 속이려드니 용서할 수가 없소』라고 호되게 꾸짖고는 당장 방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우게 하고 시험관은 즉시 파직을 시켰다는 얘기였다.
그 동안 가장 조심스럽고도 신경질적인 결벽성을 주장했어야했던 우리들 교육자들의 주변은 어떠했으며, 뿐만 아니라 최고의 공인이요, 자랑스런 등불의 자리인 의원님들의 자리, 또한 어떠했던가?
시시콜콜한 묘사로 우리들 스스로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루빨리 다급한 대로 「불신」과「냉소」의 분장들을 하나하나 지워갔으면 싶을 뿐이다.

<시인>▲38년 마산출생▲경희대 영문과졸업▲「여류시」 창간동인▲시집『상사초』·수필집 『흐르는 물에게 물어보아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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