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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수루에 비쳐 밤새 시 읊어" 칼보다 빛난 이순신의 감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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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이번 추석의 달은 유난히 큰 슈퍼문이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큰 달을 완상하려 삼삼오오 늦은 밤까지 공원이나 산기슭을 배회하는 것을 보았다. 우주선이 여러 번 착륙해 황량한 달의 실체를 수없이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달에 대해 낭만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아득한 옛날에 달을 느끼고 숭배했던 마음이 본능처럼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젊은이들 노래엔 달은커녕 어떠한 자연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가곡을 들어야 가까스로 어릴 적 달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등불을 끄고 자려하니 휘영청 창문이 밝으오. 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달은 어여쁜 선녀같이 내 뜰 위에 찾아온다….”(김태오 작사, 나운영 작곡 ‘달밤’) 요즘 듣기에 딱 좋은 노래다.

 고대인은 달밤에 낮과는 다른 기운이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태음(太陰)의 그 기운은 인간과 동물의 감성을 항진시키고 신비한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주술적 기운이었다. 그래서 작가 이병주는 “사실이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낮이 역사 현실이라면 달밤은 신화적 세계인 셈이다. 일본의 동화작가 오가와 미메이(小川未明)의 ‘달밤과 안경’이라는 작품을 보자. 한 할머니가 달밤에 바느질을 하고 있다. 눈이 침침해 곤란해 할 때 안경 파는 고학생이 지나간다. 안경을 사두고 쉬고 있는데 예쁜 소녀가 와서 손을 다쳤다고 호소한다. 할머니가 상처를 치료해주려 아까 산 안경을 끼고 다시 보니 소녀가 아니라 날개를 다친 나비였다는 이야기다. 이 아름다운 동화는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된 달밤의 신화적, 몽환적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자고이래 수많은 시인, 묵객이 달을 노래하고 그려냈다. 그런데 백전불패의 무장인 충무공 이순신이 그들 못지않게 달에 대해 충만한 감수성을 지녔다면 다소 의외일까. 놀랍게도 우리는 『난중일기』에서 달을 두고 쓴 수많은 감상적 글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정도의 상식을 훨씬 넘어선다. 2차 견내량(見內梁) 해전을 치르기 전 그는 이렇게 썼다. “이날 저녁, 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홀로 앉아 이리 저리 뒤척이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자려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닭이 울고서야 선잠이 들었다.(是夕, 海月滿船, 獨坐轉展. 百憂攻中, 寢不能寐, 鷄鳴假寐)”(노승석 역주, 『난중일기』, 1593년 5월13일)

 그는 또 이렇게도 썼다. “이날 밤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아 회포를 견디기 어려웠다.(是也, 月色如晝, 波光如練, 懷不自勝也)”(1593년 8월17일)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였던 때의 글을 보자. “이날 밤 희미한 달빛이 수루를 비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시를 읊었다.(是夜, 微月照樓, 寢不能寐, 嘯詠永夜)”(1595년 8월15일) 그는 장군인가, 시인인가. 심지어 그는 그 험한 명량해전을 치른 날 밤 해역을 떠나며 이렇게 썼다. “달빛을 타고 다시 당사도로 옮겨서 정박하여 밤을 지냈다.(乘月移泊于唐<7B25>島, 經夜)”(1597년 9월16일)

 아아! 이 감수성이라니! 요즘 고취하고 있는 충무공 리더십의 실체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영화 ‘명량’도 충무공의 반쪽 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달빛에 겨워 뒤척이는 그 시적, 인문학적 감수성이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구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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