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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정원 정치 개입 유죄, 뼈를 깎는 개혁 계기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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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법원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11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원장을 포함한 국정원 직원은 정치활동 관여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국정원법 9조를 위반한 혐의다. 재판부는 “야당 및 정치인을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과 트윗 글은 정치 관여 행위”라며 “이 같은 활동이 원장의 지시에 터 잡아 전개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18대 대선과 관련해 선거운동을 지시하거나 특정 후보의 당선·낙선을 위해 계획적으로 활동한 혐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대선 때 본격 선거운동으로 전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일 뿐 지속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점은 인정한 셈이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역사가 깊다.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을 주도했다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안기부로 이름이 바뀐 87년엔 폭력배를 동원해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한 일명 ‘용팔이 사건’을 조종했다. 김영삼 정권 때인 97년엔 대선을 앞두고 ‘북풍 사건’을 일으켰다. 정보기관의 피해자였던 김대중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정원으로 개명했지만 정치인 등에 대한 불법 도·감청은 계속됐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드러날 때마다 개혁 여론이 거셌다. 그러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 때 정보기관 개혁을 부르짖다가도 정권을 잡으면 국정원을 정권 유지의 도구로 이용하는 행태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국제분쟁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조차 한국 국정원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정보의 정치화, 정치 개입을 꼽았을 정도다.

 국정원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사건에 이어 최근 대공 사건마다 법원에서 판판이 무죄로 깨지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실력도 의심받는 한심한 상황으로 추락한 것이다. 남북이 대치해 있는 우리나라에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강력한 정보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해 일하는 국정원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