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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중산층의 재산 관리|은행·증권·주택금고를 골고루 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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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후의 폐허에서 오늘의 경제대국 서독을 재건한 이면에는 국민모두의 피나는 근검절약이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세사람이 모여야 성냥을 켜 담뱃불을 붙였다든가, 해진 옷을 끝까지 기워 입었다든가 하는 얘기는 독일사람들의 근검절약을 말해주는 예로 통했었다.
그렇던 서독에 최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엔조이하자는 풍조가 어느새 깊게 스며들었다.
여름이 되면 1천만명 이상의 인구가 해외 피서지를 찾아 휴가· 관광여행을 떠나는가하면 국내에는 국가 돈으로 운영하는 각종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급팽창하고있다.
서독사람들이 얼마나 해외여행과 여름휴가를 즐기는지는 국제수지의 관광여행비에서만 1백억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수도 본을 비롯해서 국내 곳곳에는 정부가 직영하는 수영장 등 각종 시설이 갖추어져있고 어른은 2마르크 (약6백원)만 내면 하루 종일 즐길수 있다.
국제수지의 적자폭이 커지고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서독병이라는 이름마저 생겼다.
서독사람들은 전후의 근검절약정신이 해이해진 때문이 아닌가고 반성하고있다.
그러나 엔조이풍조가 생겼다고 해서 무절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생활 구석구석에 합리성은 철저하게 못 박혀있다. 결코 쓸데없는데 돈을 쓰거나 낭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인플레의 교훈을 뼛속깊이 체험한지라 통화가치의 안정에는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저축으로 나타난다.
생활의 합리화, 저축의 생활화, 이것은 서독의 경제를 뒷받침하고있고 경제대국의 위치를 지키게 한다.
특히 중산층의 건실한 생활태도는 그중에서도 받침대 역할을 한다.
서독의 중산층은 우선 은행상담실에서부터 그 모습이 두드러진다.
월급 수표를 사이에 두고 상담원과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는 공무원 차림의 어느 40대-.
그 옆자리 테이블엔 작업복차림의 노동자가 차례를 기다리고있고 입구에 마련된 대기실에선 농부인듯한 두 부부가 통장을 꺼내놓고 전자계산기를 두드린다.
공장노동자와 농부, 그리고 공무원 등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서독의 중산층이 적금가입에 앞서 상담을 나누거나 대기중인장면이다.
은행뿐만 아니라 주택금고와 증권시장도 서독의 중산층으로선 빼어놓을 수 없는 재산파트너.
고객의 90%가 이들 중산층이며 거래총액의 85%가 중산층 자금이란 점을 감안할 때, 중산층 「러시」가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할 수가 있다.
본에 있는 중산층 연구소의 수석연구원 「권더· 카이재르」 박사는 공장 노동자의 대두이래 80년의 역사뿐인 서독의 중산층에 우선 수적으로 다른 선진공업국을 압도한다고 강조한다.
월간 순수입이 1천2백마르크 (한화 약32만원) 에서부터 5천마르크까지를 한 카테고리로 놓을때 전체의 73·5%인 l천6백21만 가구가 중산층이라면서 자본주의하에선 만족한 규모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방대한 중산층의 형성과 함께 은행이 바빠졌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80년말 현재 중산층의 총예 금고는 무려 1천5백37억 마르크라는 어마어마한 숫자.
여기에 예금통장 소지율이 94·4%에 이르며 가구당 예금고가 1만마르크 (한대 약 2백80만원)를 웃돌아 재산증식을 위해 어느 정도 은행을 이용하는가를 알수 있다.
중산층의 은행 이용도가 높은 만큼 은행이라면 항상 중산층으로 초만원이다.
더욱 은행거래에 앞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찾아 은행마다 찾아다니기 때문에 상담실이 만원이라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겠다.
최근 중산층사이에 인기 있는 예금으로「저축은행」이 창안해낸 「우대금고」가 등장했다.
부금 불입기간이 무려 6년이며 다른 우량예금에 비해 고작 연리 0·5%가 유리할뿐 인이「우대금고」가 러시를 이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산층의 재산관리가 어느 정도 철저한가를 알수가 있다.
뿐만아니라 주택금고와 중권시장도 은행 못지 않게 활용도가 높다.
주택금고는 무엇보다도 주택건설을 위한 직접적이고도 실효성 높은 장치가 마련돼있다는게 최대의 장점이다. 8만마르크만 불입하면 누구나 20만마르크까지 연리·4·5%란 저리로 대부받을수 있는 무주택자에 대한 융자특혜가 그 대표적인 예.
그밖에도 본인이 매달 1백33마르크씩 납부하면 고용주가 52마르크씩 별도 보조해주는 6만마르크짜리 주택우대금고 등 내집을 갖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수 있다.
중산층의 44%가 그 회원이며 그들의 불입총액이 6백32억마르크라는 통계만으로도 중산층의 부동산 붐을 손쉽게 알게된다.
뿐만아니라 중산층은 증권시장에서도 왕자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중산층의 투자총액이 7백57억 마르크이며 투자가구당 평균 1만6천마르크 어치의 증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때 놀라운 진출이 아닐수 없다.
그밖에 중산층 세계에선 투기형과 절약형이 사이좋게 공존, 극대극의 방법으로 재산증식을 꾀한다해서 흥미의 대상이다.
투기형의 선두그룹은 달려나 금시장에 뛰어들어 차액을 노리는 사람들.
한꺼번에 일확천금까지 노릴수 있는 반면, 재수 없게도 「꽝」을 잡을때 그대로 패가망신 할 수도 있어 위험한 증식법이다.
반면 절약형이라면 투기형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예금을 꺼내지 않기 위해 바캉스를 포기하며 심지어 자기집을 세준 후 값싼 서민주택에 입주하는 등 비록 개미형의 증식이지만 위험부담이 없는게 이들의 특징이다.
결론적으로 볼때 전체의 73·5%를 점하는 중산층이 은행과 주택금고 그리고 증권시장 등에 2천9백28억 마르크를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위험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해 재산을 현금·부동산·중권으로 고르게 투자한다는 것도 재산증식과정의 커다란 흐름인 것이다. <본=이근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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