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끝났는데…미국 경제 언제 회복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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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미국 경제가 부진한 것은 이라크 전쟁 때문이란 분석이 많았다. 문제의 이라크 전쟁은 예상보다 빨리 3주 만에 끝났다. 그러면 경기회복은 이제 시간문제인가. 그러나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당장 주식시장의 반응이 시원찮다.

전쟁은 쉽게 끝났지만 미국 경제를 보는 눈은 아직도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고 있다. 앤서니 산토메로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총재는 지난 주말 올해와 내년도 성장률이 3~4%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암운에 짓눌렸던 1분기의 예상 성장률도 2.3%로 전분기(1.4%)에 비해서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확대일로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등을 감안할 때 미국 경제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관건은 소비=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제가 더 나빠질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저금리 덕에 자동차와 주택시장에서의 소비지출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쟁의 불확실성이 사라짐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도 조금씩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6월 말이나 늦어도 3분기 초에는 경기흐름이 좋아지는 걸 피부로 느낄 것이라는 경제학자들도 꽤 많다.

미시간대가 조사하는 소비자체감지수는 이달 들어 83.2를 기록해 지난달 말의 77.6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기업들은 아직도 조심스럽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제너럴 모터스(GM)는 최근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이유로 올해 실적의 달성이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비관론자들은 북핵 문제나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확산, 시리아와 이란 문제 등 경제외적 불안요인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기업실적은 개선 중=미국의 대표적인 5백대(S&P 500) 기업의 올 1분기 순익증가율은 8~9%에 달해 실적부진이 이젠 끝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정보기술(IT)업계의 양대 산맥인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1분기 실적도 모두 좋게 나타났다. 모토로라.IBM 등 다른 기술기업들의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시티그룹 등 금융회사들의 실적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토메로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총재도 "매출이 증가하고 재고가 줄어들면 기업들이 생산을 늘리게 되고 이는 고용증가로 연결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전쟁 전에 가파르게 올랐던 유가도 최근 20% 정도 떨어져 산유국들은 감산 논의를 할 정도다.

고용시장은 불안=미국의 취업자 수는 경기침체가 시작된 직후인 2001년 3월 이후 2백60만명이 줄었고, 이 기간 중 신규 주간 실업수당 청구자 수는 40만명을 웃돌았다.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자는 전주보다 3만명 늘어난 44만2천명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2년 이상 경기후퇴를 겪는 바람에 기업들이 좀처럼 인력채용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다. 웰스파고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손성원 박사는 "기업들은 분명한 수요증가를 확인한 뒤에야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경제지표=제조업 분야의 투자동향은 아직도 뚜렷하게 잡히는 것이 없다. 최근 인텔이 올해 설비투자를 계획한 대로 집행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호재로 분류되는 정도다. 금융자산관리회사인 팬아고라는 콘퍼런스 보드가 조사한 지난달 경기선행지표가 0.2%포인트 하락했지만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났기 때문에 다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3월 신규주택 착공은 전달보다 8.3%나 증가한 1백78만채(연간으로 환산)로 예상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나 주택시장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달보다 0.3% 올라 전문가들의 예상치(0.4% 상승)를 밑돌았다. 인플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주가와 달러는 약세=기업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지만 주가는 여전히 비실대고 있다. 현재 다우지수는 8,300선이고 나스닥지수는 1,400선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렌 버핏은 미국의 주가수준이 여전히 높다고 말한다.

달러화는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4년째 이어지는 주가하락으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고 이라크유전 개발권도 미국 기업들이 장악한다고 볼 때 오름세를 탈 요인을 안고 있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다. 달러 약세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미국의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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