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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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는 20일의 한-일 외상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기본구상은「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이다.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의 15년을 반성하고 그 15년간 빚어졌던 시행착오와 구태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확연하다.
지도층의 교체에 따른 과거 청산과 세대교체 적인 성격도 짙게 깔려 있다.
새시대의 한일간 대화는 그래서 제2의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게 정부방침이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지난 15년간의 양국관계를 결산하는 대차대조표를 보자.
양국의 경제협력은 13억 달러의 공공차관 도입실적에 2백45억 달러의 무역적자로 호혜협력의 구호가 무색하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 한일관계를「일의 대수」로 즐겨 불러온 일본이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게 일본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한국관계의 제 정립을 촉구하는 우리의 기본입장은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온 과거의 한일관계가 결코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있은 노신영 외무부장관과「이또」전 일본외상과의 접촉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한반도에 대한 기본인식으로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으로 인한 전쟁위협 및 연간 예산의 35%, GNP의 6%이상을 국방비에 투입하는 한국의 안보노력에 의해 일본이 이익을 보고 있다는 현실을 일본이 인정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지난 2월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정세 및 한국의 안보역할에 대한 전폭적인 견해의 일치를 확인했고 이로써 최근 수년간에 걸친 양국의 불편했던 관계도 명쾌하게 청산됐다.
이러한 인식논리가 제2의 우방이라고 일컫는 일본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한반도안보에 대한 인식의 일치와 이를 전제로 한 경제협력의 확대는 이같은 맥락에서 재기되고 있다.
현실인식을 비롯한 한일간의 여러 문제를 풀어 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한일간의 양자관계와 함께 한·미·일을 잇는 3각 관계 및 방서 자유진영의 대소전략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지난 5월의 미일정상회담에서「레이건」미대통령은 미국이 동북아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국에 2개 사단의 미군(지상군 및 공군)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일본이 미의 핵우산과 주한미군의 보호아래 경제번영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지적했다.
「레이건」대통령은 동북아지역에서의 일본의 안보역할분담을 요청하고 구체적으로 연간 20억 달러에 이르는 주한미군유지비에 상응하는 기여를 일본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 7월의 오타와 서방7개국 경제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의 방위 비 증액과 안보역할 분담이 영국 등 다른 서방 국에 의해 제기되었다.
일본이 안보역할을 분담할 지역은 바로 한반도이며 그 분담규모는 주한미군 2개 사단의 연간유지비인 20억 달러 선까지 끌어올려져야 한다는 논리가 이후 대두되었다. 물론 이러한 액수는 실제로 부담해야 할 액수라 기보다는 상징적인 뜻이 더 강하다.
일본의 대한경제협력은 이러한 맥락아래 지금까지의 양국간 문제의 차원에서「레이건」 미 정부의 세계전략을 배경으로 3자 관계 내지는 세계전략 적 차원으로 변화되었다고「레이건」대통령이 재기한 액수는 새로운 한-일 경제협력관계에 있어서도 하나의 기준으로 부각되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인식을 같이하는 자세이며 인식의 일치를 바탕으로 양국간 상호의존적 협력을 위한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시작하자는 것이 한국정부의 공식 태도라는 게 외교당국자의 설명이다.
한일외상회담에서 논의될 문제는 비단 경제협력 뿐만 아니라 북한문제·재일 동포 문제·문화교류문제 등 다기 하다.
특히 일 측에 의해 제기될 것으로 보이는 문화교류문제는 양국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양국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견지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비단 어제 오늘에 재기된 문제는 아니지만 일본측은 이번 회담에서 일 영화나 음반의 대한 진출을 요청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제하의 방년간에 걸친 식민지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들의 한국문화말살정책에 대한 깊은 혐오와 함께 일본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경우 빚어질 국민감점의 반발 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한일양국간에 걸려 있는 여러 현안문제는 결코 어느 것 하나 쉽게 풀기 어려운 산 넘어 산의 어려움이 있다.
그런 뜻에서 한일간에 예정돼 있는 외상회담과 각료회담 등 일련의 정상화로 가는 스케줄을 보다 차분하게 근본적인 데서부터 하나하나 풀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유 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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