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속에 산다.|방음재 거의 안써 ".소리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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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파트단지는 소음의 무방비지대. 수십 가구가 한 건물에 모여 살다보니 이웃간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항의·진정이 끊일새 없다.
TV연속극 소리, 아이우는 소리, 수세식 변기 사용하는 소리쯤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니다.
한밤중에 부부싸움이 요란히 벌어지는가 하면 생일잔치 노랫소리가 밤11시가 넘도록 울려 퍼져 이웃을 잠못들게 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 6월 한강변 H아파트로 이사간 황모양 (17·S여고3년)은 소음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쪽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황양은 음대 피아노과 지망생. 졸업반이라 하오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다 돌아오면 밤8시가 넘어서야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다. 이사간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동네 파출소 순경이 찾아왔다.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고 이웃이 진정을 했다는 것이다.
황양은 10여만원을 들여 방사면 벽에 모두 커튼을 달았다. 무더위 속에서도 창문까지 닫아걸고 조심스레 건반을 두드렸다.
그러나 이웃들은 여전히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고 불평했다. 피아노 소리가 얇은 아파트 벽을 타고 울려 퍼진다는 것이다.
결국 피아노에 두꺼운 담요를 덮어씌웠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가 마치 솜방망이로 두들기는 소리가 되어버렸다고 황양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파트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소리는 나란히 선 아파트 건물벽에 반향되어 더욱 크게 울려 퍼지기 때문.
그러나 아파트에 관련된 모든 현행 법규에는 소음에 대한 규제조항이 하나도 없다. 내부구조나 외·내벽의 두께에 전혀 제한이 없다. 그러니 차음재(차음재)도 개발된 것이 없을 수밖에-.
서울시는 몇년전부터 간선도로변 아파트주민들이 소음을 규제해 달라고 잇달아 진정해 오자 최근 들어서야 「환경영향평가」를 실시, 간선도로변에 새로 짓는 아파트는 방음벽이나 수림대를 만들도록 행정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방음벽에 대한 설치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아파트업자들은 높이 10m정도의 값비싼 나무로 수림대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난색을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은 소음뿐 아니다. 몇년전까지 지은 아파트들은 대부분 1층에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 많다.
업자들이 눈앞의 이익만을 따져 좁은 땅위에 될 수 있는대로 많은 건물을 세우려다보니 건물사이를 제대로 떼어놓지 않은 까닭이다. 강서구 K아파트는 다른 아파트와는 달리 1층 가격이 5층보다 싼 기현상을 보이고있다.
이 아파트의 건물간격은 법정기준보다 3∼4m나 좁은 10m정도. 1층은 여름철 한낮에나 잠깐 햇볕이 비치곤 다시 그늘이지고 만다.
주민 정철희씨(52)는 『해가 기우는 겨울철에는 그나마도 비치지 않는다』며 『빨래는 늘 옥상에 널어야만 한다』고 불평했다.
서울시 건축조례는 아파트 건물사이를 건물높이의 1.25배이상 확보하도록 되어있다.
5층 아파트의 경우, 건물높이를 13m로 보면 건물사이는 최소한 17m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지킨 아파트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건물사이가 가깝다보니 소음·일조권은 물론 프라이버시까지 문제되고 있다.
79년3월 연세대 이경회교수(공대)가 조사한 것에 따르면 5층 아파트 주민의 절반 가량(41.9%)이 「항상 이웃에서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이 교수는 건물사이가 높이의 2.5배 가량은 떨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지적하고 건축조례규정도 최소한 1.7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는 사람이 많이 모여살다보니 많은 소비자들을 쫓아 상가와 복덕방은 물론 비밀요정·사무실까지 파고들어 주거환경을 망치고 있다. 상가가 너무 많이 들어서 마치 시장 한가운데에 아파트가 들어선 느낌.
신반포 고속버스터미널 주변 아파트단지 주위에는 I종합상가·N슈퍼·K쇼핑등 수많은 상가가 들어서 주거지역 아닌 상업지역으로 변해버린 셈이다. 이 같은 사정은 여의도·서초동 아파트 단지등도 마찬가지. 양장점·제과점은 물론 요즈음엔 안마시술소에다 쑥탕까지 들어섰다. 동부이촌동·여의도 아파트단지와 영동H 아파트등은 비밀요정이 10여군데이상 영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부 아파트 단지들이 상업지역화·유흥가화 하자 79년4월 부랴부랴 주택건설 기준에 관한 규칙을 마련, 아파트 단지 안에는 유흥업소·복덕방·사무실등이 들어설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어느 아파트단지를 가봐도 그 같은 규정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는 실정이다.
일부 아파트 업자들이 수익성만을 앞세워 아파트보다 평당 분양가가 훨씬 높은 상가를 될 수 있는대로 많이 짓고있기 때문이다.
상가는 많아도 물가는 비싼 것이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 일반시장보다 줄잡아 20∼50%는 비싸다.
요즈음 시장에서 3백원정도면 살 수 있는 호배추 한 포기가 4백원이며 호박 1개값이 시장보다 배나 비싼 2백원정도다.
어쨌든 아파트가 안락하고 편리한 주거형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아파트가 업자들의 이익에만 치중되어 눈가림으로 지어지거나 입주민들의 공중도덕이 결여될 때 아파트는 『오래 살지 못할 곳』이란 낙인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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