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IS 소탕작전…앙숙 국가끼리 손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서방 측 최고 승전지로 꼽히는 이라크 북부 아메를리 마을. 지난 4일(현지시간) IS의 퇴각을 자축하는 현지인과 시아파 민병대 영상 속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인물이 포착됐다. 콰셈 솔레이마니(53) 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측을 막후에서 도와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미국의 지원으로 IS의 공격을 막아낸 아메를리 마을의 전투에 참여하고 IS의 퇴각에 환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트위터엔 그가 미군 측 총기로 무장한 현지 민병대원과 악수하는 사진도 올라왔다. 오랜 앙숙인 미국과 이란이 IS라는 공공의 적 앞에서 손을 잡았다는 증거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아메를리 마을은 82일간 IS의 포위를 버텨내 ‘이라크의 행주산성’으로 불린다. <본지 5일자 10면>

IS의 발호에 맞서 어제의 앙숙이 오늘의 동지가 돼 반(反) IS 전선을 구축하면서 묘한 국제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IS라는 적을 놓고 새로이 생긴 연대가 기존의 이해와 충돌하면서 지역구도까지 재편하고 있는 모양새다. 아메를리를 놓고 미국과 이란은 정부 대변인 명의로 연합을 부인했으나 양측의 배후 협력은 기정사실화됐다.

외신들은 솔레이마니가 시아파 민병대 3개 부대를 이끌고 작전을 지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수니파 강경파인 IS를 몰아내는 데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솔레이마니와 함께 시아파 민병대를 이끈 이라크의 하킴 알자밀리는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에 대항해 싸웠던 건 과거다. 오늘날 미국은 IS에 함께 맞서 싸우는 동맹"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NYT는 “IS사태의 좋은 면이 있다면 앙숙끼리 손을 잡은 것”이라 표현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역시 진화시키고 있다. 그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 온 미국은 동중국해ㆍ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과 부딪혔다. 지난달 남중국해에선 미 공군 포세이돈 정찰기와 중국군의 젠11 전투기가 공중전을 방불케 하는 상호 근접 비행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7일(현지시간) 방중했던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에 반(反) IS 전선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 측 인사는 “중국이 확답을 하진 않았지만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IS에 대응하는 국제 연합전선을 만들려는 미국과 IS가 중국 내 신장 자치구의 무슬림에게 세를 뻗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중국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ㆍ중 관계는 한쪽에선 군사적 긴장이, 다른 쪽에선 군사적 협력을 모색하는 딜레마가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IS로 촉발된 미국의 가장 큰 딜레마는 시리아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로 세를 넓힌 IS를 격퇴하기 위해 공습을 고려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발표 예정인 IS 대응전략에도 시리아 공습이 포함돼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문제는 IS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도 대립각을 세워왔다는 데 있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 제거를 목표로 해왔던 미국이 IS를 목표로 공습을 한다면 아사드 정권에 좋은 일을 해주는 셈이 된다. NYT는 중동지역 전문가 마이클 스티븐스의 말을 빌려 “1년 전엔 아사드 제거 방법을 찾던 미국이 지금은 아사드 지원 방법을 찾고 있다”고 꼬집었다. 적의 적을 동지로 삼지 못하고 여전히 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복합방정식을 풀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IS는 오랜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라이벌 관계 역시 변화시키고 있다.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과거 강경 수니파인 IS를 묵과했으나 IS의 과격성이 국제사회 도마에 오르면서 IS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시아파 이란과 ‘반 IS’라는 대의를 공유하게 됐으며 이는 양측의 대리전 성격을 띤 시리아 내전 종말의 청신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NYT는 대니얼 커처 프린스턴대 교수를 인용해 “IS는 이슬람이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 7세기 이후 이어져온 역학관계를 흔들어놨다”며 “지금 중동은 어느 때보다 더 역동적인 시대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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