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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김원 건축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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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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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를 찾아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중략) 그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중략)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중에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아 순아! 순아! 순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 서정주(1915~2000) ‘부활’ 중에서

오래 전 일이지만 내가 두 살 아래 누이동생을 잃었을 때 나는 슬프다기 이전에 정말로 허망하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추억 속에 그 누이를 곁에 느끼며 산다. 세월호 유족들이 나처럼 미당(未堂)의 시 ‘부활’을 읽으면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민족에게는 뿌리 깊은 부활 사상이 있다. 심청이 용궁에서 황후가 되어 부활한다는 이야기에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는다.

 며칠 전 단원고 희생자 여고생의 어머니 세 분을 만났다.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러고만 있었 다.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울음보를 부둥켜안은 엄마들은 그냥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금방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미당 시집에서 ‘부활’을 찾아 “이걸 좀 보세요.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했다. “심청은 아름답게 부활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웬일인지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지극한 슬픔은 아름다워서 더 슬픈 것일까. ‘젊은 어머니들이 슬픔에 잠겨 있지만 참 미인들이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가볍기도 하고,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김원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