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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단자·신용금고 협공 받아|대출금 신장률 저조…거래기업부도 3∼4% 시은의 수배 「토착화」않고 무턱댄 서울 진출 서두른 일부 은행 망신|「사면초가」의 지방은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사면초가예요. 웬만한 기업들은 죄다 시중은행과 단자회사들이 쓸어가버리고 서민들 예금은 상호신용금고나 회사채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니…˚』
10개 지방은행 사람들의 이 같은 푸념은 더욱 심해졌다.
곳곳에 들어선 지방단자회사들이 높은 금리를 앞세우고 기업 자금을 긁어들이는데다가 말썽 많던 상호신용금고가 제자리를 잡고 동네마다 파고드는 바람에 지방은행들은 꿩도 닭도 다 놓치는 형세에 빠진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대출금의 신장률을 봐도 지방은행은 2.4배점도 증가에 그친 반면 지방단자회사는 5.6배, 상호신용금고는 7.8배나 늘어났었다.
여기에다 최근 시중 은행들의 자율화 바람을 타고 지방 공략을 더욱 세차게 서두르는 탓에 그동안의 구석차지나마 자꾸만 좁혀들고 있는 형편이다.
시중은행이나 특수은행이나 가릴 것 없이 곳곳에 점프를 내놓고 온라인이 없는 은행은 은행 축에도 못 끼는 것처럼 떠들어댄다(지방은행은 온라인이 안되어 있다) .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지방은행이 전체 은행자산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다(75년 13.1%, 77년 12%, 79년 10.6%, 80년9.0%).
다들 뜀박질을 하는데 유독 혼자만 뒷걸음질을 쳐온것이다.
거래기업체중에서 부도를 내는 비율도 보통 3∼4%선으로 시중은행의 1%미만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고 제때 갚지 않은 연체율도 9.6%(시중은행 5.5%)에 달한다.
좋은 거래선은 다 빼앗기고 부실한 기업을 상대하다보니 장사내용도 이처럼 시원치 못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지방은행의 부진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 더 심해졌다는 것뿐이다.
우리나라 돈의 70∼80%가 서울에서 돌고 있으니 번듯한 기업은 모두가 서울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서겠다고 지방은행마다 서울 진출을 서둘렀던 것이 또 설상가상이었다.
모두가 수출, 수출하는데 지방은행도 이판에 한몫 끼어 들려면 서울시장으로 직접 나서야 했다.
예대 이자나 따먹고 있다가 신용장이나 지급 보증서류1장으로 손쉽게 돈이 벌렸고 하루아침에 지방은행도 국제화의 대열에 끼어든듯 싶었다.
구멍가게이지만 친절을 외치며 큰 은행들에 맞서 나갔고 반응도 좋았다.
시중은행에서 거절당한 네고서류를 들고가도 두말없이 돈을 내줬고 자기은행의 전 재산보다도 많은 지급보증도 서슴지 앉았다.
서울지점장들은 제일은행 내에서 일등공신으로 부상했고 은행간의 수지경쟁을 결정적으로 좌우했다. 이것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자기들이 단골 고객이라고 믿고있던 회사 중에는 경고처분받은 기업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대봉에 정신 없이 돈을 퍼주다가 결국 충북은행을 망쳐버린 김모 전 은행장의 말이 더 걸작이다.
어쩌자고 그렇게 무작정 돈을 대주고 지급보증을 서 줬느냐는 질문에 그는『지점장이 스탠드바이 LC라는 것을 해주면 은행은 돈도 안들이고 그냥 앉아서 돈올 벌 수 있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나야 뭐 자세하게 압니까-˚』 무모한 것도 이쯤 되면 비견할 데가 없다. 충북은행뿐 아니라 경기은행이 초석건설에 물려 같은 신세가 되었고 지방은행 중에서 가장 크다는 부산은행 역시 최근 동명목재의 도산으로 신음하고 있다. 함께 거래했던 제일은행은 오히려 대출금보다도 많은 담보를 챙기고 있는데도 말이다.
제고장의 예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무리하게 황새걸음을 걸었던 탓이다. 지방은행의 생업이 바로 그 지방에 토착화하는 것인데도 그들의 관심은 대기업들이 요란하게 붐비는 서울쪽으로만 쏠려왔다.
결과적으로 지방은행을 골병들게 한 부실기업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성급하게 이익을 늘리려 덤벼들다가 거꾸로 손해를 입고 만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이무기신세가 요즈음의 지방은행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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