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의 마지막 카드 -김선흠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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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이차이가 많으니까 애기 아빠가 굉장히 사랑하고 아껴주겠구나?』
우리부부의 나이차이가 10살이라는 것을 아는 친지나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흔히 던져오는 첫 인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사실 우리는 나이차이가 남들보다 조금 많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다를 게 없는 아주 평범한 부부다. 차이점이 있다면 부부싸움을 하면서도 그이에게 꼬박꼬박 경어를 써야한다는 것 정도일까.
『너는 왜 그렇게 못하니』하는 남편에게 『그러는 당신은 왜 그렇게 못하시는 거예요』하는 식이다.
말투 자체가 이렇게 대등하지 못한 탓인지 우리의 싸움은 으레 나의 후퇴로 끝나게 마련이다.
조그만 일을 크게 만들어 싸움을 거는 쪽이 대부분 내자신인 경우가 많은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그쪽에게 얼마나 한심하고 골치 아픈 여자로 비칠까하는 나의 콤플렉스가 작용할 때가 많다.
명분 없이 물러서서 뭉개진 자존심을 괴로워하다 보면 어느새 남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양보하는 계기가 되다시피 하는 싱거운 부부싸움이다. 끝까지 따지고 주장하며 사과 받는 꼿꼿한 아내가 되지 못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마는 둥글둥글 닳아버린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전의 일이다.
극히 사소한 일로 투닥거리게 된 것은 여느 때의 시작과 다름없었다. 그날도 으레 나의 양보로 끝나게되리라 아예 체념하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이의 말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그렇게 어린애같이 생각할 수가 있느냐. 이만하면 나도 내 입장에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다 그만두자』는 요지였다.
순간 나도 감정이 폭발했다. 남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의 발언에 『너 잘났으니 옳다 그만두자』로 응수하고 말았다. 남편에게 그런 식의 태도를 보인 것은 처음이었고 그이도 나도 막바지까지 다다른 부부싸움에 큰 상처를 입고 후유증을 잃고있는 중이다.
싸움직후에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실망에 말을 잃고 말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보다는 그이의 상처가 더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걸 어쩌랴.
그이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심중에 넣어두었던 마지막 카드를 던지고, 그러면 속이 후련해 질줄 알았던 것이 잘못이었다.
상대방에게 최대의 무기인양 자신 있게 흔들어 맸던 분노의 깃발은 알고 보면 내 자신을 부정하는 태도였고 삶 그 자체를 터무니없이 모함하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두 사람의 기분을 막다른 데까지 몰아넣고서야 겨우 그것을 눈치챈 나는 정말 어리고 철없는 아내인 것 같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4 산호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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