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60억달러차관 요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일본은 한국이 태평양에서 일본방위의 방파제구실을 하고, 따라서 한국의 안보가 일본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상황판단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한국의 안보에 기여하는 일을 한 실적이 없다.
그리고 일본은 「한·미·일의 삼각협력체제에 의한 극동의 안정」이라는 미국의 기본전략에도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기 보다는 한일, 미일관계에서 계속 이기적인 불협화음만 빚어왔다.
그러나 일본의 이런 자세는 한국과 아세안(ASEAN)의 관계강화와 21일 폐막된 오타와선진국수뇌회의에서 벽에 부딪쳤다.
전두환대통령의 아세안순방을 계기로 한국과 아세안은 소련위협에 인식을 같이하고 동남아안보와 동북아안보의 연계를 확인했다.
오타와정상회담도 「레이건」의 대소전략을 축으로 서방측이 공동보조를 취하자는 전략조정에 성공했다.
오타와에서 합의된 대소공동전략은 소련위협에대한 인식의 일치를 전제로 정치·경제분야의 책임분담을 의미하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일본에 해당되는 책임분담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대한차관의 증액및 성격의 변화다.
「스즈끼」(영목선행) 일본수상은 오타와에서 「레이건」과 가진 개별회담에서 「미일관계가 회복되었다」고 판단될만큼 미국의 기본전략에 이해와 협조의 자세를 보이고, 한일간의 협력증진을 위해서 빠르면 가을에 전두환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에 앞으로 5년간 60억달러의 차관을 요청했고 일본은 안보적차원에서 이 요청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것이라는 보도가 오타와정상회담 직후에 나온것이 이와같이 우연은 아닌 것이다.
한국은 82년부터 시작되는 5차경제개발계획을 위해 일본에 60억달러이상의 차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즈끼」 수상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23일 한국의 대일경협기대는 매우 큰 모양인데 전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최종적인 매듭을 짓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한일국교정상화이후 지난16년간 공공차관 12억5천5백만달러, 상업차관 24억4천7백만달러를 합쳐 36억9천만달러를 일본으로부터 받았다. 16년간에 걸친 36억9천만달러의 차관에 비하면 5년간 60억달러는 산술적으로 「대폭증액」인 것같다.
그러나 한국의 누적된 대일무역적자가 무려 1백90억달러가 되는 것을 고려하면 5년간 60억달러가 일본의 신문들이 무슨 난리라도 난것처럼 떠드는 만큼의 엄청난 액수는 아님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더구나 그것이 안보를 위한 차관이라면 오히려 너무 적은 액수같다. 「레이건」과 「스즈끼」는 오타와에서 일본의 대한경협이 대소전략의 관점에서 중요하다는데 합의했다.
따라서 대한차관의 성격도 종래의 「민생안정」을 위한 것에서 미국의 전략을 배경으로 하는 안보의 차원으로 바뀌게된 것이다. 이것은 오타와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소공동보조, 책임분담의 중요한 한갈래를 이루는 것이다.
일본신문들이 60억달러 대한차관을 대서특필하는 것이 일본정부가 조종하는 여론조작이라고 속단하고싶지는 않다.
일본이 만약 국내여론을 업고 대한차관에 인색한 태도를 취한다면 일차적으로 그것은 오타와정신의 위반이되고 「레이건」과의 양해를 위반하는 것으로 일본의 국제적인 신뢰에 큰 상처를 입힐 것이다.
일본은 소위 대소인식에서 오타와의 수뇌들및 한국과 견해를 같이한 이상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한 비군사적 공헌에 인색할수가 없을 것이다.
일본신문들은 지금도 대한차관을 「대한원조」라고 부른다. 한국은 일본에 원조를 구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일두나라의 안보상 이익이 되는 경제·사회개발계획을 위해 돈을 꾸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오타와합의」를 원용하면 한국의 대일차관요청은 한반도에 구축한 일본방위의 방파제를 감화하는데 기여하라는 의미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것은 방위의 「무임승차」를 「염가승차」로 전환하는 것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