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후 따라 시정을 담는 여유가 생활의 멋|은유가 없이 할말을 다하면 감칠맛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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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초복도 중복도 지나갔다. 소서도 대서도 지나가고, 유두도 지나갔다. 이제 절기는 가을을 세운다는 입추를 앞두고 있다. 입추 전날엔 칠석이 들고, 칠석이 지나면 백중으로 접어든다.
다들 아시다시피 유두는 동쪽으로 흐르는 냇물을 찾아가 머리를 감고 액운을 흘려 보내는 날이요, 복날은 「복」이라 하여 금기(가을 기운) 가 엎드린 날이라고 참외 수박으로 복날임을 하고 개장국으로 더위를 씻는다. 칠석날 밤의 견우와 직녀의 애간장이 타는 설화는 그만 두고라도, 백중날 물꼬를 찾아가 겨릅대에 꽂아 둔 인절미며 수수 단자를 뽑아 먹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깐깐 오월, 미끈덕 유월, 어정 칠월, 등등 팔월-옛사람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지금 사람보다 훨씬 지혜로 왔다. 열두 폭 병풍 속에 매난국죽 사군자며 기명 절지를 그려 넣듯, 세시의 마디마다, 절후의 굽이마다, 차곡차곡 심상을 그려 넣어 그것을 타이름으로 삼고, 사는 날의 축제로 삼았던 것이다.
시란 (무릇 예술이란) 고달픈 인생 길의 안위요, 긍정이요, 또한 치유인 것이다. 우리들 모두 시조 짓기 운동에 동참하여 병든 세월, 지친 목숨을 치유하자.
『장미』(이영주) 아무 무리 없이 3수까지 이끌어 나간 저력을 산다. 그러나 장미꽃을 한국 여인, 특히 책상으로 비유 한데는 무리가 있다. 더더구나 가시(장미)가 어떻게 은장도이며, 개구리 상식 울음에 따라 울 수 있겠는가?
『소나기』(김민정) <시들던 가로수잎 새로 본듯 푸르러고>말고는 이 시에 은유도 적유도 없다. 할말을 다 해 버리면 그것 산문이지 벌써 시가 아니다.
『새 색시』(김윤호) 선이 굵은 시. 그러나 이 시인의 작품에도 항간에 숨겨 둔 말이 없다. 하기 때문에 여운이니 감동이니 라는 게 없다.
『졸곡 날 고향을 떠나며』(김두년) <따숩던 어머님 손길 뿌리치던 보리 들녘>말(조사)이 좀 생경한 대로 감동이 있다. 이 시에는 꾸밈(작위)이 없기 때문이다.
『야상곡』(채수길) 인생을 오뇌 하지 않고는 시가 안 된다. 값싼 감상은 무병이 통이다. <정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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