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 찔려 돌아온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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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전 일이다. 시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연세가 많은 할머니 한 분이 쏟아지는 빗속을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나는 집까지 다온 후여서 좀 낡긴 했지만 아직은 쓸만한 나의 우산을 건네주고 집을 향해 뛰어 들었다.
다음날 그 할머니의 손녀라는 여고생이 찾아왔다. 할머니가 비에 흠뻑 젖어 길을 가도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고맙게도 아주머니가 우산을 빌려주어 할머니가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물론 우산은 잘 손질해서 말려 곱게 접어 가져왔으며 예쁜 보자기에 과일까지 싸 들고 왔다.
무심코 행한 나의 작은 성의에 이처럼 알뜰한 보답을 받고 보니 오히려 미안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신문이나 TV를 통해 가끔 인정이 메마르고 정의로운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가 있다.
나 역시 가족과 주변의 일상에 묶여 한발 건너의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지 못했다. 또 이웃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에 무감각하여 미처 신경쓸 여유가 없다. 그나마 조그만 우산 사건 하나로 나는 이웃의 흐뭇한 정감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의 일이다.
1시면 유치원에서 돌아 올 큰아이가 2시가 거진 되었는데도 돌아오질 않아 길밖에 나가 보니 오른쪽 발에 피투성이를 하고 절룩거리며 오고 있지 않은가. 피는 이미 많이도 흘러내린 것 같았다.
놀라서 연유를 물어 보니 발을 헛디디며 길가의 깨어진 유리병에 발이 찔렸다고 했다. 아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는데도 오가는 사람이 쳐다만보고 있어 그냥 집까지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상처는 6바늘을 꿰맬 정도로 컸다. 공연히 아이에게 조심성 없다고 나무람을 했지만 누구에겐 지는 모를 분함이 가슴에 차 오르고 있었다.
「페스탈로치」가 길가의 유리 조각을 줍던 일화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리라. 그런데 그 길가의 유리 조각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울고 있는 아이를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은 어른마저 사회에는 없다는 말인가.
어린이를 병원까지 만이라도 데려다 주고 상처에서 피라도 멎게 해줄 여유가 현대인에겐 없는 것인지.
울어도 울어도 아무도 관심을 보여 주지 않는 사회를 보고 과연 내아이는 무엇을 느꼈으며 배웠을 것인가.
내 아이 때문에 당한 분노이긴 하지만 그래도 며칠 전 이웃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정감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내 마음에 파문이 일고 있음은 어찌할 수 없다. <강릉시 임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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