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납치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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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천 만원을 사기 당한 한 무역상인이 채무자를 쫓아 미국에 갔다. 현지 교포폭력배를 동원, 대낮 뉴욕 한복판에서 채무자를 납치했다.
「몸값」으로 빚돈을 회수하려던 그의「분노작전」은 미국경찰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나고 거꾸로 쇠고랑을 차게 됐다.
이 무슨 해프닝인가.
이른바「국제화 시대」의 개막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에 따른 많은 문제점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동안도 말썽이 돼왔던「번개출국」범죄가 우선 클로즈업되고 있다. 70년대 이후 해외문호가 넓어지면서 국내재산을 몰래 정리하거나 거액의 부도수표·사기 계로「한밑천」을 빼돌린 다음 어느날 갑자기 해외로 날아버리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피해자가 속출한다. 이번에 납치된 강모씨도 납치범 권씨외 여러명에게 80여만 달러 상당의 부도를 내고 도망친 지명수배자.
빼돌린 돈으로 해외에서 무위도식 호화생활을 하는 질이 매우 나쁜 친구들도 적지 않다. 현지 교포사회에서 빈축을 사는 것은 물론 교포사회에 위화감을 조성, 단결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국은 올부터 해외이주 심사과정에서 부채자 등은 피해자의 신고만 있으면 이주 허가를 해주지 않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상용여권으로 나가 눌러 앉아버리는 등 편법에는 속수무책, 허점은 그대로다. 미국 등과는 범죄인 인도협정도 없어 한번 도망하면 대개 그뿐,『닭 쫓던 개꼴』로 하늘만 쳐다보는 수밖에 없다.
납치극을 벌인 권씨의 심경도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는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실제로 주먹이 법보다 쉽게 빨리 문제를 해결해주는 풍토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식법치주의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한국식 우격다짐은 한국에서만 통한다는 것을 잊는 바람에「무법 한국인」이라는 나라망신까지 하게됐다.
현지교포청소년들의 폭력화 경향도 우려를 낳는다. 갱 조직화하고 있다는 현지에서의 심심찮은 보도는 대부분 1세들이「2세 교육」을 이유 삼아 해외에 이주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아이러니컬하다.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이 정신적 실향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그들 대부분은 미국시민이다. 그러나 법적 신분을 떠나 그들은 여전히「코리언」이다. 해외진출확대와 함께「해외에서의 한국관리」에 적절한 대책이 있어야겠다. 그리고 또 다른 이런 유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죄 짓고는 어디서도 편히 살수 없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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