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성 발가락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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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어느 겨울날 왼쪽 두번째 발가락이 유난히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하도 추워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더니 불과 며칠 사이에 그 크기가 거의 두배로 되면서 옆으로 번질 기세를 보이는 것이었다.
우선 장화 신기가 불편해서 의사를 찾아보았다.놀랍게도 증세의 원인은 신경을 너무 쓰는데서 오는 것이라 했다.
몇 봉지의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별효과가 없어서 이번엔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역시 똑같은 대답을 얻었다.
그 병명을 들은 동생이 어째 누이는 두뇌가 발가락에 있느냐고 한바탕 웃어댔다. 머리로 신경 쓰는 사람은 보았어도 발로 신경 쓰는 사람은 못 보았다는 이론이다.
도대체 무슨 신경을 내가 그렇게 쓸까?… 택시를 타면 온갖 차량이 나를 향해서만 충돌해 오는 것 같아 자동적으로 두손을 움켜쥔다.백화점이나 시장에를 가면 갑자기 뭇 시선들이 못 믿어져서 핸드백을 꼭 끼어 든다.
길을 건널 매는 항상 바로 발뒤꿈치 뒤에 차가 달려온다는 아슬아슬한 느낌 속에 줄달음질을 한다. 또 약간의 불쾌로 전화기를 닥 놓고 종일 후회 속에 소용돌이를 친다.
흑은 하고 싶은 말들을 알뜰한 체면, 자만심 때문에 냉가슴 속에 꾹 묻어 두어야 함이 그것일까? 먼 곳에 있거나 멀리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한없이 누르고 있어야 되는 현실,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쏟아 놓아야하는 마음씀 등….
직장과 가정을 간단한 쳇바퀴인 듯 늘 규칙적으로 돌아가면서도 이런 저런 긴장과 불안감이 가시처럼 돋아나서 나의 발가락 두뇌(?)를 질러버렸나 보다.
편안하고 화려한 현대 생활이 탐스러운 장미, 가시 돋친 향기로운 강미라고 생각해 본다. 이리 질리고 저리 찔리면서도 그 모습에 도취되어 장미 숲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나와 숱한 사람들….
아름다움만을 방패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저항력이 약해 서로 찌르고 찔리며 신경전으로 숲을 헤쳐나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이 세대가 빠져나간 뒤 우리 아이들이 밟아 나가야 할 숲은 과연 어띤 것이 될지-
가시보다 향과 미를 더 의식할 수 있는 맘이 된다면 오죽 좋을까만 그 세대 역시 이상 두뇌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에 내 예민한 발은 조금도 회복의 뜻을 안 보인다.
자질구레한 걱정 의에도 점점 더 해가는 공해와 오염을 이대로 놓아두다가는 다음 세대의 신경법은 아마 밭에만 그치지는 않으리라.
무슨 해결방법이 있으랴. 시원한 창가에 앉아 내 상처투성이의 두뇌를 좀 쉬게나 해주어야겠다. 시를 읽으면서,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서-. <조봉옥 주부(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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