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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조선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일본교통공사가 매년 발간하고 있는 『세계여행안내서』의 「대한민국」 편을 보면 첫 머리에 이런 예고가 적혀있다.
『…한국여행의 금구는「조선」이라는 말이다. 오랜 습관에 따라 무심코 입에서 나올지도 모르지만 한국인은 그 말을 여간 불쾌하게 듣지 않는다 일본인들도 알기는 제대로 알고 있다. 일본인들을 위한 여행안내서인 만큼 그 책을 읽은 사람은 아마 그 충고를 명심할 것이다 유독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만 『한국어강좌』개설을 앞두고 모처럼의 좋은 뜻을 공연한 시비로 그르치고 있는 것 같다. 예의「조선」이라는 말 때문이다 .NHK는 그 프로를 하필이면『조선어』강좌로 고집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본관리나 준 관리들의 의식수준은 두 가지 중 하나라는 오해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무감각한 목석이거나 아니면 트러블 메이커이거나 .이번 「조선어」 운운의 경우를 두고 보아도 그 의식정도가 민간인들보다도 훨씬 뒤져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해도 불쾌하긴 마찬가지이다. 아니 그렇다면 더 문제가 있다. 고의적이고 의도적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상대방이 불쾌할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피하지 않는다면 그런 의심을 사도 마땅하다.
우리와 일본은 민족적인「불쾌감」과 서로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될수록 그런 것을 극복하고 지내는 것이 서로를 위해 미덕일 것이다. 또 어느 일방에선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예의「여항안내서」가 그런 좋은 본보기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서울 장안 한복판 대로에서「하오리」(우직)를 걸치고 「게따」를 끌며 일본인들이 떼지어 떠들며 활보하고 다닌 일이 있었다. 글쎄 ,우리의 기분엔 영 맞지 않지만 ,그래도 서울시민들은 손가락질을 하거나 시비를 건 일이 없다. 그런 일본인들이 예뻐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NHK의 한국어 강좌개설은 어느 쪽을 위해서도 다 좋은 일이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 서로의 생활과 풍속과 문화 그리고 마음까지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마음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그런 의도가 몇 사람의 공연한 고집으로 왜곡 된다면, 그 계획 자체의 뜻도 상실되고 만다.
분명한 사실은「조선」이란 표현은 우리 역사의 산물이긴 하지만, 일본식민시대의 종언과 함께 청산된 명칭이며 ,오늘의 현실에선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고 일본과는 외교관계조차 없는 북한의 명칭이란 점이다. 한민족의 3분의 2가「조선」아닌「한국」이란 말에 더 호감을 갖고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주민들 역시「조선」보다는 「한국」을 더 마음의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다.
NHK에 묻고 싶은 것은「타이·(태국)를 과연 「샴」으로, 베트남을「안남」으로 부르고 있느냐는 것이다 .유독「한국」만을「조선」으로 부르려는 그 심사는 우선 국제관례로 보아도 보편 타당상이 없다. 일본인들이 하찮게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처럼 불쾌감을 갖는 것은『왜 그릴까』를 우선 일본인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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