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의 마르크스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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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모택동의 우상파괴와 보수파의 득세로 끝난 중공의 권력개편은 중공의 한 새시대의 개막을 의미할 뿐 아니라 국제공산주의 운동에도 큰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6중전회가 문혁 잔당들의 저항을 누르고 채택한 「당의 역사에 관한 결의」와 새 주석 호요방이 창당 60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은 중공이 지금부터 걸을 노선이 반좌·실용주의적인 것이며, 모택동과 문혁파가 강조한 혁명의 이념보다 경제건설이라는 현실문제에 중점을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당의 역사에 관한 결의」는 58년 시작된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운동을 모택동의 과오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문화혁명은 당과 국가와 모든 인민을 내란으로 이끌고 간 큰 재앙이었고, 그런 잘못이 장기간 저질러진 것은 모택동의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 결의는 모택동 추종세력인 범시파들을 무마하여 당의 결속을 강화할 목적으로『전체적으로 볼 때 모택동 동지가 중공혁명에 남긴 공적이 제1이고 과오는 제2』라는 구절을 넣어 모택동 격하에 일종의 상한선을 긋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등소평(부주석), 호요방, 조자양(수상)트리오의 만만한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요방은 기조연설에서『마르크스주의는, 공산주의자의 강력한 무기요 지도이념이긴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인류 역사의 모든 진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고 선언했다.
이 표현은『마르크스주의는 생각 없이 추종할 경직된 교리가 아니다』, 『우리들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긴 안목을 가지고 현실적인 접근을 할 줄 아는 혁명가들 이어야한다』는, 그 뒤의 표현과 함께 낡은 이념의 굴레의 탈피, 실천파 트리오의 실용주의적인 사상을 나타내고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암시하는 것이다.
색깔이야 희든 검든 쥐잡는 고양이가 정말 쓸모 있는 고양이라고 말한 등소평의 현실감각이 호요방 연설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실천파의 실용주의 노선이 구체적인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는 『자유도 좋은 일이나 외국의 경험을 분석하고 배우는 일도 중요하다』는 호요방의 말이 설명한다.
『당의 모든 사업은 경제건설에 집중되어야 한다』는「당의 역사에 관한 결의」와 함께 호요방의 말을 음미하면 결국은 사상투쟁보다는 경제건설을 통한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이 우선되어야할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방 선진공업국가들은 자본과 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이것은 「경제의 대장정」을 의미하는 것인데,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도로 미국과 협력하는 도미항소 노선이 더욱 강화될 국내조건의 완비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실천파가 호요방의 연설과「당의 역사에 관한 결의」에서 강조한 것은 중공의 근대화 추진을 위한 전력투구, 당내 민주주의 강화를 통한 모택동식 독재나 개인숭배의 배격, 등·호·조트리오 이후에 대비한 당의 젊은 간부층의 양성, 스탈린주의적인 드그머 극복, 문화혁명이 가져온 혼란의 완전해소 등이다.
서방세계 ,특히 미국의 정부관리, 중공전문가들의 중공의 실천파의 등장을 공산주의의 「종말의 시작」으로 보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이고 ,북경주재 미국 특파원들도 공산주의사상의 퇴색 쪽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는 투의 글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실천파가 극복하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아니라 스탈린주의가 대표하는 교조주의적 공산주의, 모택동의 정치우선의 노선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마르크스주의가 오늘의 중공이 필요로 하는 근대화추진, 소련견제의 현실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시대감각을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의 사양으로 단정하는 것은 아직은 속단이라고 생각된다. 수정된 공산주의도 공산주의임엔 틀림없다.
호요방도 『미래를 향한 장정에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의 지도를 받음으로써 보다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역설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 당의 지도, 마르크스 ,례닌주의, 모택동 사상이라는 4개의 기본원칙이 당과 인민의 단결을 위한 공통의 정치적 기반이요 사회주의 현대화를 위한 근본적「보증」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다만 한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우리의 기대의 대상이 되는 사실은 실천파의 근대화노선이 이윤도입을 포함한 자본주의 경제의 방법에 더욱 과감히 접근하리라는 점이다.
호요방이「현보적인 접근」을 강조한 배경은 중공이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이다.
75년 주은내는 중공경제를 서기2천년까지 구·미·일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적인 계획을 발표했지만 그것이 화국봉의 과도체제를 거쳐 등소평 중심의 실용주의자들의 손으로 넘어오면서 주은내가 약속한 개인 당 국민소득 1천 달러는 8백달러로 대폭 후퇴 ,조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용주의지도부는 중공 경제발전의 장애요인을 교조주의적 공산주의 이념의 집착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브너스제, 사기업부활, 기업상호간의 경쟁같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서서히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소련이 소위「리베르만」이론을 조심스럽게, 부분적으로 도입했을 때 중공이 퍼붓던 비난·공격을 회고하면「당의 역사에 관한 결의」가 행한 모택동의 사상파괴와 함께 실로 금석지감이 있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체제는 역사발전에 있어서 안티테제가 있을 수 없는 신테제로 파악했다. 그러나「마르크스」가 사정한 역사의 「종착역」은 중공에 등장한 새로운 안티테제의 도전에 밀려「중간역」으로 격하되고 있다 .만물유전을 설파한「헤라클례이토스」의 논리가 공산주의 체제에 당도했을 때의 마르크스주의에도 적용되지 않으리라고. 단정한「마르크스」의 오류가 그의 충실한 제자를 자처하던 중국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 지금 북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갖는 사상사적 의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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