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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할 상황 됐어도 작업 강행|7명의 목숨을 앗아간 정동 광업소 사고의 문제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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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소홀한 보안 교육, 낙후된 장비와 시설, 감독관청의 일손 부족으로 인한 감독 소홀 등….
특수한 작업장이기에 가장 엄격히 지켜져야 할 각종 보안 규정이 외면당한 데서 이번 정동사고는 빚어졌다.
지하 1백여m의 갱도에는 각종 전기 시설물·환풍·송풍·배수 장치 등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가운데 언제라도 낙반·매몰·질식·폭발 등의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다. 현지의 광부들에게서 문제점을 들어본다.

<장비·시설 낙후>
광산 보안법상 정동 광업소와 같이 가스 분출이 많은 갑종 탄광에서는 갱내에서 일하는 광부의 수만큼 가스 마스크를 갖추게 되어 있다. 그러나 정동 탄광의 경우 방독 마스크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2차 폭발 때 갱내에 들어간 34명 가운데 간부 5명만 마스크를 착용했을 뿐이다.
또 메탄 가스가 폭발했을 경우 곳곳의 탄층이 무너지는 봉락 현상으로 탄층 안쪽에 괴어 있던 가스나 지하수가 다시 쏟아져 나올 위험성이 크며 이에 따라 철저한 사전 점검을 한다음에 구조반을 투입하는 것이 상식. 그러나 1시간이라도 빨리 사망자 시체를 발굴하고 채탄 작업을 재개하려는 욕심만으로 사전 점검을 소홀히 한 채 갱 안에 들어갔다가 또 다른 사고를 불렀다.
정동 광산은 그나마 광산 보안에 신경을 쓰는 편으로 작년 말 철탑 산업 훈장까지 받은 탄광이다.
강원도내 67개 탄광 가운데 석공 산하 5개와 10여개의 대형 민영 탄광 이외의 대부분 광산은 자금의 영세성, 기술의 낙후성을 면치 못한 채 원시적인 장비로 석탄을 캐내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보안 교육 소홀>
매일 작업에 들어가기 전 보안 교육을 함께 실시토록 돼 있으나 대개 단순한 작업 지시만으로 끝내고 있다.
1년에 몇 차례씩 실시하는 정기 보안 교육도 군소 탄광에서는 형식에 그치는 실정. 갱내에는 담배·성냥 같은 인화 물질을 갖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정되어 있는 데도 광부들은 몰래 숨겨 들어가는 수도 많다.
특히 가스가 많은 탄광의 경우 갱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화약을 다룰 때의 안전 수칙이나 채탄 작업 중의 굴착기·탄차 등에서 일어나는 스파크에 대한 주의 등 광부들의 채탄 작업은 늘 사고에 대비한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번 정동 탄광 사고의 경우 폭발 당시 갱내 메탄가스 농도는 5%로 나타났다. 광산 보안법상 자연성 가스가 2%이상이면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토록 되어있는 데도 이것이 무시됐다.

<감독 소홀>
정선·영월 지구 광산을 관장하는 동자부 영서 출장소에는 광산 안전 관리를 전담하는 광산 보안관 6명이 배치돼 있다.
이들이 맡아야 하는 14개 광산의 광부는 1만7천여명. 1명이 3천여명을 맡아야 한다.
이는 이웃 일본의 1명 당 1백명에 비해 30배나 많은 것.
현장 중심의 실질적인 보안 감독을 못한 채 탁상 보고에 그치는 실정이다.
1년에 두번 실시하는 정기 보안 점검도 눈에 잘 띄는 갱 밖의 시설물들을 점검하는데 치중할 뿐 실제 위험이 도사린 갱내 시설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실정이다.
작년 한해 강원도내 탄광에서는 4천여건의 각종 안전 사고가 일어나 1백60여명이 숨지고 4천여명이 다쳤다.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재해를 입은 셈이다.
특히 이번 정동 광업소 메탄가스 폭발 사고에서 드러났던 가스 사고에 대한 대책은 거의 무방비 상태. 외국의 경우 가스 분출 위험이 많은 탄광에서는 송풍 시설과 압축 공기 주입 등 폭발이나 질식 사고를 미리 막기 위한 예방 시설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작업 전에 반드시 사전 측정을 하는 보안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대부분의 탄광들은 채탄 목표 달성에만 급급할 뿐 이같은 보안 규정이 무시되는 실정이다.
정동 광업소는 평소에도 가스 분출이 많아 광부들이 작업 중 호흡 곤란을 느끼는 등 대책이 필요했으나 손을 쓰지 않아 참사를 불렀다.
석탄 1백만t 생산에 사망 11명 꼴인 우리 나라 탄광 사고는 일본의 2.8배, 영국의 22배나 되는 것으로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고한=문병호·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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