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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교류와「텃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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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심히 관찰해보면 집에서 기르는 동물에도 제집 부근에 자기구역이 있는 것 같다.
외부침입자가 나타나면 시끄럽게 굴지만 일단 거기를 벗어나 다른 구역으로 들어갈 때는 눈치를 보고 다닌다. 그런 면은 인간세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의사들이 환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의 용어로 자기들끼리만 의사소통을 한다든가, 기술자들의 소위「근성」같이 사회구석구석에 자기구역을 강조하면서 얄팍한 예의적 특권을 누리려는 텃세가 널리 퍼져있다.
공무원사회에서도 이 같은 할거의식 때문에 지금까지는 부처간의 인사교류가 말만 나오다 좌절되곤 해왔다.
지난 6월 발효된 국가공무원법은 이 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부처간의 인사교류를 명문화하고 각 부처의 폐쇄적인 인사권남용을 막기 위해 공무원임용에 있어서는 총무처장관과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해 놓았다. 이 법조문이 지난 25일 대폭적인 내무부인사 때 첫 시험대에 올랐으나 결과는 법이 관행에 TKO패를 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7월l일부터 직할시로 승격된 대구와 인천의 직할시장자리, 2백만 이상 시와 도 등 9곳에 신설되는 부지사, 부시장자리, 광명시 등 시로 승격된 10곳의 시장자리 등 새 자리만 20석이 넘었다.
그러나 총무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타부인사는 원래 내무부출신이었던 전 서울시부시장 외에는 단 1명도 비집고 들어가지 못했다.
총무처에서는 지방행정이 순수한 내무행정분야라기보다 도시계획·주택·상하수도·농정·사회복지 등 타 부처 관할사항이 더 많고 비중도 크므로 총리실·건설·농수산·보사부 등에서 유능한 전문인을 지방행정가로 투입해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새로 생기는 제2부시장·부지사자리는 도시계획·건설 등을 맡는 자리이므로 이들을 관계부처에서 고르자는 구상아래 구체적인 후보자 추천까지 했었다.
그러나 내무부는 부처간의 인사교류이전에 내무부 내에서 중앙과 지방간의 인사교류부터 시행되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타부처가 자기들의「영역」은 고수하면서 유독 내무부자리만을 공유하자는 발상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논리를 폈다는 얘기다.
결국 30여년 관행의 벽을 법이 무너뜨리지 못한 채 인사교류의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설령 앞으로 어떤 형태의 인사교류가 이루어진다 해도 지금까지의「텃세」가 없어지지 않고는 인사교류를 해봐야 간 사람이 맥을 못쓰게 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인사교류의 본래의 뜻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타 부처로 가면 의붓자식 취급을 받는 현실에서 누가 교류를 희망하겠는가.
문제는 공무원사회에 팽배한 텃세풍토를 어떻게 불식해나가느냐가 법 시행에 앞서 해결돼야할 과제인 것 같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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